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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어 미술관 · 워싱턴 · 독립 가이드

프리어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
다섯 스팟, 무료.

휘슬러의 공작, 촐라 왕조의 청동상, 우주불을 이 탭에서 들려 드립니다. 고대 중국의 옥기부터 한국의 청동기까지, 프리어가 가진 26,000점이 넘는 나머지 소장품은 사진 한 장이면 Chiaro가 풀어 줍니다.

Chiaro 제작. 프리어 미술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9:41

우마 여신으로 표현된 셈비얀 마하데비 왕비

프리어 미술관, 워싱턴

0:00 2:13
스팟 1 / 5

다섯 개의 스팟 · 오디오 12분

다섯 곳, 하나의 동선,
관람 순서대로.

프리어 미술관의 전시실은 모두 안뜰을 둘러싼 한 층에 있고, 이 프리어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는 그 층을 한 바퀴 도는 코스입니다. 내셔널 몰 쪽 입구 가까운 Gallery 1에서 여신의 모습으로 청동으로 주조된 촐라 왕조의 왕비로 시작해, 북쪽을 따라 동쪽의 중국 전시실로 갑니다. Gallery 17의 우주불과 바로 옆 Gallery 16의 소그드인 석관상을 본 뒤에는 남쪽으로 꺾어 Gallery 12로 향합니다. 그곳 피콕 룸의 벽난로 위에 휘슬러의 〈도자기 나라의 공주〉가 걸려 있고, 마지막으로 그 방 자체가 코스를 마무리합니다. 다섯 트랙을 다 합치면 약 10분, 짧은 이동과 진열장마다 잠깐 멈추는 시간까지 넣으면 한 바퀴에 30분쯤 걸립니다.

이 페이지의 모든 서술은 두 가지와 맞춰 보았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의 오픈 액세스 소장품 데이터로 공개된 미술관 자체의 작품 기록, 그리고 외부 참고 자료 한 가지입니다. 전시실 번호는 2026년 9월 25일에 확인했습니다. 프리어는 소장품을 절대 밖으로 빌려주지 않지만, 수장고의 작품과 바꿔 가며 전시 내용을 교체하기는 합니다. 전시실 안내판이 저희 설명과 다르다면 이 페이지보다 안내판을 믿으시고, 알려 주시면 바로잡겠습니다.

스팟 1 / 5 · West Building(서관), Gallery 1(전시 ‘Body Image: Arts of the Indian Subcontinent’, 인도 아대륙의 미술)

우마 여신으로 표현된 셈비얀 마하데비 왕비

촐라 왕조, 인도 타밀나두 · 10세기 · 청동, 107.3 × 33.4 × 25.7 cm

눈여겨볼 점

  • 얼굴. 오므린 입술과 긴 코 때문에 흔히 보는 평온한 여신보다 개성이 뚜렷합니다. 미술관이 이 상을 초상일지도 모른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 세 번의 굽힘. 엉덩이는 한쪽으로 내밀고, 어깨는 반대쪽으로 기울이고, 머리는 그 사이에 자리 잡습니다. 트리방가라고 부르는 자세입니다.
  • 다리를 덮은 천. 젖은 비단처럼 몸에 달라붙을 만큼 얇게 새겨져 있습니다.
스크립트 (2:13)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몸의 흔들림입니다. 무게는 한쪽 다리에 실려 있고, 엉덩이는 옆으로 밀려 나오고, 어깨는 반대쪽으로 기울고, 머리는 그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인도의 조각가들은 이 자세를 트리방가, 곧 세 번의 굽힘이라고 불렀습니다. 받침대 위에 꼼짝 않고 서 있는 1미터 높이의 청동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명패에 적힌 이름은 〈우마 여신으로 표현된 셈비얀 마하데비 왕비〉입니다. 이 제목은 앞부분도 뒷부분도 다 중요합니다. 자세는 여신의 것이고, 파르바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왕비는 실제로 살았던 여성이었습니다. 남편 간다라디티야 촐라는 949년부터 957년까지 남인도를 다스렸고, 왕비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왕비는 애도의 색인 흰옷만 입었습니다. 그리고 60년쯤에 걸쳐 재산을 사원에 쏟아부어, 많은 사원을 짓고 그보다 더 많은 사원에 기부했습니다. 미술관은 그를 크게 존경받은 예술 후원자라고 부릅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생일은 그의 이름을 딴 도시의 시바 사원에서 기념되었고, 왕비를 본뜬 금속 초상이 그를 기리며 그 사원에 바쳐졌습니다. 여기서 미술관은 조심스럽습니다. 이 상이 바로 그 조각일 가능성이 있다고만 말합니다. 확실한 것은 이런 상이 어떻게 쓰였느냐입니다. 이것은 행렬용 청동상입니다. 축제 날이면 비단으로 감싸고, 보석과 꽃목걸이를 걸어, 온 동네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거리로 메고 다녔을 것입니다.

이제 얼굴을 보십시오.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가장 좋은 근거가 거기 있습니다. 오므린 입술에 긴 코. 미술관은 이런 종류의 상치고는 얼굴 생김새가 유난히 개성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10세기 사람들이 생김새를 보고 왕비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무엇에 쓰였는지로 알려졌습니다. 이 상이라면 생일의 행렬이지요. 아무도 알아볼 필요가 없는 상에 이토록 특징 있는 얼굴이 있다는 것, 바로 그런 세부가 초상이라는 가설을 지금까지 살려 두고 있습니다.

프리어가 이 상을 사들인 것은 1929년, 설립자의 이름을 딴 기금으로였습니다. 2017년에 지금의 전시가 문을 연 뒤로 그는 줄곧 이 방에 서 있습니다. 다음으로 가기 전에 시선을 다리로 내려 보십시오. 천은 젖은 비단처럼 달라붙을 만큼 얇게 새겨져 있고, 주름 하나하나가 몸의 흔들림을 따라 흘러내립니다. 그 끝에는 그의 발이 천 년 동안 딛고 선 받침대가 있습니다.

스팟 2 / 5 · West Building(서관), Gallery 17(전시 ‘Promise of Paradise’, 낙원의 약속)

욕계를 새긴 가사를 걸친 불상(우주불)

북제, 중국 허난성 안양 지역 · 550–577년 · 석회암, 151.3 × 62.9 × 31.3 cm

눈여겨볼 점

  • 가슴의 수미산과 그 둘레를 감은 뱀 두 마리. 불교도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다고 믿은 산입니다.
  • 옷자락 바로 위에 빽빽한 장면들. 지옥의 형벌로, 이 지도의 맨 아래에 해당합니다.
  • 홈에 남은 희미한 색. 가사의 장면은 모두 한때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스크립트 (2:03)

건물 북쪽을 따라 동쪽의 중국 전시실로 들어가면, Gallery 17에서 머리 없는 상 하나를 만납니다. 이 코스의 어떤 작품보다 많은 이야기가 새겨진 상입니다. 실물 크기로, 석회암 높이가 1.5미터를 조금 넘고, 받침대를 빼고도 무게가 800파운드, 그러니까 360킬로그램이 넘습니다. 입고 있는 것은 모든 부처가 그렇듯 승려의 소박한 가사입니다. 이 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가사가 우주의 지도라는 점입니다.

학자들은 이 상을 비로자나불, 곧 우주불로 봅니다. 중국어로는 피루저나라고 부릅니다. 이 발상은 법화경에서 왔습니다. 역사 속 부처가 설법할 때 그 앞에 온 우주의 광경이 나타났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북제 시대, 550년에서 577년 사이 어느 때에, 중국 북부의 조각가들은 이 가사의 앞뒤를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채웠습니다.

가슴에서 시작하십시오. 저 봉우리가 수미산, 불교도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다고 믿은 성스러운 산이고, 그 둘레를 감은 뱀 두 마리는 나가입니다. 그 아래로는 깨달음을 얻기 전, 젊은 왕자였던 시절의 부처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제 시선을 옷자락 바로 위까지 내려 보십시오. 빽빽하게 모인 작은 인물들은 지옥의 형벌입니다. 위에는 성스러운 산, 가운데에는 왕자의 삶, 옷자락에는 지옥. 그 모두가 옷 한 벌 위에 있습니다. 미술관은 이 구성을 존재의 영역들이라고 부릅니다.

홈 안쪽을 들여다보면 색의 흔적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 장면들은 한때 채색되어 있었고, 안료가 조금 남아 있습니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이 조각을 거의 읽어 내지 못했습니다. 부조가 워낙 얕아서, 종이에 먹으로 탁본을 떠서야 무늬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가을, 스미스소니언의 디지털화 팀이 2주 동안 이 상을 레이저로 스캔했고, 그 3D 모델 덕분에 그때까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장면들이 읽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델을 바탕으로 미술관의 고대 중국 미술 큐레이터 키스 윌슨은, 이 조각이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승원에서, 누군가 곁에 서서 장면을 하나씩 차례로 설명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의 생각이 맞다면, 이것은 이 건물에서 가장 오래된 오디오 가이드입니다. 1,400년 전, 누군가 지금 여러분이 선 자리쯤에 서서, 가슴의 산에서 옷자락의 지옥까지 저 가사를 신자들에게 풀어 주었던 것입니다.

스팟 3 / 5 · West Building(서관), Gallery 16(전시 ‘Center of the World: China and the Silk Road’, 세계의 중심: 중국과 실크로드)

소그드인 악사와 무용수를 새긴 석관상(石棺床)

북제, 중국. 소그드인 후원자를 위해 제작 · 550–577년 · 안료 흔적이 남은 회색 대리석, 정면 60.3 × 234 cm, 측면 부재 2점

눈여겨볼 점

  • 가운데의 향로. 꼭대기에 새가 앉아 있고, 연꽃 위에 선 광배 두른 인물들이 양옆을 지킵니다. 순수하게 중국적인 불교 도상입니다.
  • 개구부 위에 늘어선 구슬 테두리 원 여덟 개. 원마다 이국 옷차림의 악사나 무용수가 페르시아풍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 양 끝의 수호자. 긴 외투에 장화 차림으로 사나운 짐승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 측면 부재 한쪽에 있는 목이 꺾인 류트. 실크로드를 타고 온, 중국 비파의 조상입니다.
스크립트 (2:25)

바로 옆 Gallery 16에서는 폭이 2미터가 넘는 회색 대리석의 긴 판석이 눈앞에 서 있고, 그 옆에 짧은 부재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셋을 합치면 장례용 석관상(石棺床)의 받침이 됩니다. 중국식 침상 모양의 돌 대좌로, 6세기 중국 북부의 지하 무덤에서 그 위에 관을 얹었습니다.

가운데부터 보십시오. 꼭대기에 새가 앉은 향로, 그리고 그 양옆에서 연꽃을 딛고 선, 광배를 두른 천인들. 이것은 속속들이 중국의 불교 도상입니다. 이제 개구부 위의 띠를 따라 눈을 옮겨 보십시오. 구슬 테두리를 두른 원 여덟 개 안에, 이국의 옷을 입은 악사와 무용수가 페르시아 양식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양 끝에서는 긴 외투에 장화를 신은 수호자가 사나운 짐승을 땅에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 침상에 누웠던 사람은 소그드인이었습니다.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6세기 무렵에는 중국 곳곳에 그들의 공동체가 흩어져 있었다고 중국 사료가 전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상인도 있었고 관리도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그들은 중국의 관습을 받아들였고, 이런 돌 침상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석관상의 나머지 부분에 새겨진 조각은 불교 도상에, 사제들이 성스러운 불을 지키는 신앙인 마즈다교의 도상을 섞었고, 여기에 자기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한 이주민의 생애 장면을 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묘지명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이 석관상의 대부분은 이 방에 없습니다. 무덤이 발견된 것은 1911년이고, 부재들은 미술 시장으로 흘러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입을 가린 사제들이 불을 지키는 모습의 문벽 두 개는 쾰른에 있습니다. 뒤판 두 장은 1912년에 보스턴 미술관으로, 옆판 한 장은 1913년에 파리의 기메 박물관으로 갔고, 옆면 패널 하나는 지금도 행방을 모릅니다. 이것들이 한 벌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다가, 1958년에 학자 구스티나 스칼리아가 그 연결을 밝혀냈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조차 논란이 있습니다. 소그드인에 관한 스미스소니언 자체의 연구는, 북제의 수도 업(鄴) 근처인 안양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고 씁니다. 한편 미술관의 작품 기록은, 학자들이 북향당산 석굴의 제4굴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본다고 적으면서도, 불교 석굴은 매장 장소로는 이례적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떠나기 전에 측면 부재 한쪽에 있는 류트를 찾아보십시오. 그 꺾인 목은 실크로드를 오가던 악사들과 함께 중국에 들어왔고, 그 영향을 받은 악기인 비파는 지금도 중국의 실내 합주에서 연주됩니다. 이 대리석 세 점은 1923년 5월 프리어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미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팟 4 / 5 · West Building(서관), Gallery 12(피콕 룸), 벽난로 위

도자기 나라의 공주

제임스 맥닐 휘슬러 · 1863–1865년 · 캔버스에 유채, 201.5 × 116.1 cm

눈여겨볼 점

  • 왼쪽 위의 서명 ‘Whistler 1864’. 크게 써 넣었습니다. 훗날 그는 그 대신 작은 나비로 서명했습니다.
  • 손에 든 둥근 부채와 뒤의 흰 일본 병풍. 휘슬러가 수집하던 종류의 소품입니다.
  • 오른쪽 가장자리의 청화 꽃병. 이 방 전체가 바로 이런 도자기를 담으려고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발밑의 청백색 깔개.
스크립트 (2:27)

이제 건물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가서 Gallery 12에 들어가십시오. 여기가 피콕 룸 안입니다. 방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겠습니다. 먼저 벽난로 위의 그림을 마주 보십시오. 여러분을 둘러싼 모든 것이 이 그림을 위해 지어졌으니까요.

기모노를 입은 키 큰 젊은 여인이 흰 일본 병풍 앞, 청백색 깔개 위에 서서 둥근 부채를 들고 있습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863년에서 1865년 사이, 앵글로재패니즈 취향이 런던 예술계를 휩쓸던 때였습니다. 모델은 크리스티나 스파르탈리. 그리스계의 젊은 여성으로, 화가 마리 스파르탈리 스틸먼의 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애초에 그의 초상화로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술관은 이 그림을, 휘슬러가 새로운 미의 이상을 만들어 낸 것으로 읽습니다. 일본 목판화와 중국 도자기에 그려진 늘씬하고 키 큰 여인들을 재료로 짜 맞추고, 자기 수집품으로 꾸민 이상입니다. 그는 아시아에 발을 디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목의 도자기 나라는 지어낸 나라입니다.

왼쪽 위 구석을 보십시오. 큰 글씨로 Whistler 1864. 이 서명 때문에 그림이 팔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는 그림 사기를 거절했고, 또 다른 구매 후보도 이름이 너무 커서 발을 뺐다고 합니다. 휘슬러가 나중에 이름 쓰기를 아예 그만두고 작은 나비로 서명하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나비를 기억해 두십시오. 주위 벽에서 찾게 될 테니까요.

비평가들도 너그럽지 않았습니다. 1865년 파리 살롱에 걸렸을 때, 평론가 귀스타브 바티에는 아이의 입김 한 번에도 공주가 넘어가 버릴 것 같다고 썼습니다.

결정적인 구매자는 리버풀의 선주 프레더릭 레일랜드였습니다. 그는 이 방이 생기기 여러 해 전부터 이 그림을 가지고 있었고, 1875년 런던에 새집을 산 뒤 식당 벽난로 위에 이 그림을 걸었습니다. 휘슬러는 그림에 맞춰 방의 색을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이 무엇이 되었는지는 여러분 주위에 다 있습니다.

1892년 레일랜드가 세상을 떠나자 그림은 경매에 나왔고, 몇 해 뒤에는 글래스고의 수집가 윌리엄 버렐의 소유가 되어 있었습니다. 1903년 8월 20일, 휘슬러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에, 찰스 랭 프리어가 3,750파운드에 공주를 사서 디트로이트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듬해에는 방까지 사들였습니다. 1923년 프리어 미술관이 문을 연 뒤로 둘은 여기서 함께 전시되어 왔습니다. 공주와 그 궁전이, 본래 둘이 함께하도록 만들어진 그 런던 집에서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스팟 5 / 5 · West Building(서관), Gallery 12

파랑과 금색의 조화: 피콕 룸

제임스 맥닐 휘슬러 (방 설계: 토머스 제킬) · 1876–1877년 · 캔버스, 가죽, 모자이크 타일, 유리, 나무에 유채와 금박; 421.6 × 613.4 × 1026.2 cm

눈여겨볼 점

  • 벽난로 맞은편 벽에서 싸우는 공작 두 마리. 목에 은빛 깃털이 있는 쪽이 레일랜드, 은빛 볏 깃털이 하나뿐인 쪽이 휘슬러입니다.
  • 휘슬러의 나비 서명. 그는 방 곳곳에 여러 번 넣었습니다. 몇 개나 찾을 수 있는지 세어 보십시오.
  • 창 덧문 안쪽 판에 그려진 공작.
  • 도자기. 벽난로 벽과 창 벽의 것은 미술관이 소장한 강희 연간의 작품이고, 나머지 두 벽의 것은 징더전의 도공들과 함께 만든 복제품입니다.
스크립트 (3:03)

벽난로를 등지고 서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작품 안에 서 있습니다. 벽과 선반, 천장과 덧문까지 식당 하나가 통째로 1876년과 1877년에 파랑과 금색으로 칠해졌고, 런던에서 디트로이트를 거쳐 조각조각 이곳으로 옮겨져 왔습니다. 이 코스에서 안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작품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시작은 다른 사람의 설계였습니다. 건축가 토머스 제킬이 프레더릭 레일랜드가 모은 강희 연간의 중국 청화백자를 위해 이 격자 선반을 짰고, 벽에는 붉은 장미를 그린 오래된 금박 가죽을 둘렀습니다. 그런데 제킬이 병이 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됩니다. 레일랜드 집의 현관 홀을 장식하던 휘슬러가 마무리를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처음 제안은 소박했습니다. 붉은 장미를 노란색으로 덧칠해 공주와 다투지 않게 하고, 천장 돌림띠와 벽 판자에 물결무늬를 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레일랜드는 동의하고 리버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휘슬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천장을 모조 금박인 더치 메탈과 공작 깃털 무늬로 덮었고, 선반이란 선반은 모두 금칠을 했습니다. 창이 있는 벽을 보십시오. 덧문 안쪽의 공작들도 그의 솜씨입니다. 훗날 그는, 구상도 스케치도 없이 그냥 그려 나갔고, 그리는 동안 방이 자라났으며, 처음 시작한 모퉁이로 한 바퀴 돌아왔을 때는 앞뒤를 맞추려고 일부를 다시 칠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일이 꼬였습니다. 휘슬러가 손님들과 기자들을 레일랜드의 집에 불러 방을 구경시켰고, 두 사람은 대금 문제로 크게 다퉜습니다. 그러자 휘슬러는 값비싼 오래된 가죽을 프러시안 블루로 덮어 버리고, 벽난로 맞은편의 빈 벽에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을 그렸습니다. 서로 맞서 노려보는 공작 두 마리입니다. 성난 새의 목에는 은빛 깃털이 있습니다. 레일랜드가 늘 입던 주름 장식 흰 셔츠를 비꼰 것입니다. 다른 한 마리에게는 은빛 볏 깃털이 하나 있습니다. 휘슬러 자신의 이마 위로 솟아 있던 흰 머리 한 타래 그대로입니다. 그는 이 벽화에 〈예술과 돈, 또는 방의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였고, 레일랜드에게 당신은 피콕 룸의 주인으로만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고는 방 곳곳에 나비 서명을 여러 번 남겼습니다.

레일랜드는 189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방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12년 뒤 찰스 랭 프리어가 방을 사들여 1904년에 해체한 뒤 디트로이트의 자기 집에 다시 짓고, 자신의 도자기를 진열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방은 워싱턴으로 왔고, 1923년 프리어 미술관이 문을 연 때부터 여기에 있습니다. 2022년 여름에는 다시 한번 복원되었습니다.

선반 위에 놓인 것이 가장 새로운 장입니다. 2025년 9월부터 미술관은 이 방을 레일랜드 부부가 알던 모습, 곧 청화 도자기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레일랜드가 모은 것은 징더전의 도자기였습니다. 징더전은 13세기 후반부터 세계 청화 도자기의 중심지였습니다. 벽난로 벽과 창 벽에서 보고 계신 것은 미술관이 소장한 강희 연간의 작품들입니다. 나머지 두 벽의 그릇은 오늘날 징더전의 도공들과 함께 만든 복제품입니다.

그러니 방 한가운데 서서 전체를 한눈에 담아 보십시오. 옛 도자기의 벽이 둘, 새 도자기의 벽이 둘. 한쪽에는 금으로 그린 싸움이, 다른 쪽에는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공주가 있습니다.

독립 가이드 · Chiaro

프리어 미술관에서 무엇이든 Chiaro로 비춰 보세요.

저희 녹음 다섯 편은 휘슬러의 공작들 사이에서 끝나고, 그다음은 앱이 이어받습니다. Gallery 19의 고대 옥기, 한국 전시실의 청동 거울, 피콕 룸 선반 위의 도자기 하나를 찍으면 Chiaro가 그 이름과 내력을 알려 주고, 진열장 앞에서 바로 말로 묻는 질문에도 답합니다.

어느 공작이 휘슬러인가요?이 도자기는 복제품인가요?가사의 장면은 무엇을 보여 주나요?

방문 전에

01

가는 길

프리어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의 West Building(서관)으로, 내셔널 몰 남쪽 Jefferson Drive와 12th Street SW가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몰 쪽 문으로 들어가면 Gallery 1 바로 옆으로 나옵니다. 계단 없는 입구는 Independence Avenue 쪽에 있으며, 계단 왼쪽의 청동 자동문으로 들어갑니다. 미술관의 우편 주소 1050 Independence Ave. SW는 옆 건물인 새클러관의 주소이고, 새클러관은 지하로 프리어와 이어져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메트로역은 오렌지·실버·블루 라인의 Smithsonian역입니다. ‘12th St. at Jefferson Dr. SW (The Mall)’이라고 표시된 출구로 올라와 길을 건너 남쪽으로 가십시오. 정면에 보이는 분홍빛 화강암 건물이 프리어입니다.

02

입장권

  • 티켓도 예약도 없이 들어갈 수 있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고 미술관은 안내합니다.
  • 요일과 상관없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엽니다. 1년 중 유일한 휴관일은 12월 25일입니다.
  •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보안 검색을 받게 됩니다. 미술관은 모든 입구에서 관람객을 검색합니다.
  • 설립자가 기증할 때 붙인 조건에 따라 프리어는 작품을 빌려주지도 빌려 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점이 다른 미술관에 대여되어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습니다.
공식 입장권 →
03

공식 오디오 가이드

미술관이 직접 하는 안내는 대면 투어입니다. 예약 없이 참여하는 무료 투어가 있고, 대개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 도슨트가, 때로는 큐레이터가 이끕니다. 피콕 룸을 포함하는 하이라이트 투어와, 이 방의 150번째 해를 기념하는 시리즈도 있습니다. 웹사이트의 오디오 코너에는 팟캐스트와 강연 녹음이 있습니다. 저희 녹음 다섯 편도 예약이 필요 없고, 누르기만 하면 언제든 재생됩니다. 사진을 찍은 다른 작품은 Chiaro 앱이 맡습니다.

공식 사이트 →

자주 묻는 질문

프리어 미술관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위의 플레이어 다섯 개 중 아무거나 누르면 휴대폰 브라우저에서 녹음이 재생되고, 따라 읽을 수 있는 대본도 함께 나옵니다. 미술관도 도슨트가 이끄는 무료 자유 참여 투어를 운영합니다. 저희가 다루지 않은 수천 점의 작품은 Chiaro 앱을 들어 비추고 물어보시면 됩니다.

프리어 미술관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얼마인가요?

미술관이 제공하는 안내에는 요금이 없습니다. 예약 없는 무료 투어가 있으며, 대부분 도슨트가, 일부는 큐레이터가 이끕니다. 웹사이트의 오디오 코너에는 팟캐스트와 강연 녹음이 있고, 건물 입장도 무료입니다.

프리어 미술관에서 피콕 룸은 어디에 있나요?

Gallery 12입니다. 전시층의 남동쪽 모퉁이, Independence Avenue 쪽으로 Gallery 11 옆에 있습니다. 몰 쪽 입구에서는 안뜰을 빙 돌아가야 하고, Independence Avenue 쪽 입구에서는 바로 가깝습니다. 벽난로 위에는 휘슬러의 〈도자기 나라의 공주〉가 걸려 있습니다.

프리어 미술관은 매일 문을 여나요?

네. 12월 25일을 빼고 1년 내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엽니다.

프리어 미술관과 국립아시아미술관은 같은 곳인가요?

프리어는 그 일부입니다. 국립아시아미술관은 지하로 이어진 두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West Building(서관)이 프리어 미술관이고 East Building(동관)이 아서 M. 새클러 갤러리입니다. 두 곳을 합친 소장품은 46,000점이 넘습니다. 그래서 이 프리어 페이지는 국립아시아미술관 서관의 오디오 가이드 역할도 합니다.

프리어 미술관은 관람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한 바퀴에 30분쯤이고, 그중 오디오 자체는 10분입니다. 모든 스팟이 안뜰을 둘러싼 한 전시층에 있어서 스팟 사이에 계단이 없습니다. 계단 없는 입구는 Independence Avenue 쪽입니다.

다른 오디오 가이드

Chiaro 제작. 프리어 미술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