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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뤼니 박물관 · 파리 · 독립 가이드

클뤼니 박물관 오디오 가이드,
다섯 스팟, 무료.

로마 시대 목욕탕에서 태피스트리 여섯 점까지, 녹음 다섯 개가 모두 이 탭 안에서 재생됩니다. 전시된 약 2,300점 가운데 무엇이든 사진 한 장이면 Chiaro가 설명해 줍니다.

Chiaro 제작. 클뤼니 박물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9:41

뱃사공들의 기둥

클뤼니 박물관, 파리

0:00 2:29
스팟 1 / 5

다섯 개의 스팟 · 오디오 12분

다섯 곳, 하나의 동선,
관람 순서대로.

두 개 층, 1,500년, 그리고 다섯 스팟이 이 클뤼니 박물관 오디오 가이드를 이룹니다. 시작은 로마 시대 목욕탕의 냉탕실인 1번 전시실, 뱃사공들의 기둥 앞입니다. 5번 전시실로 건너가 노트르담에서 온 유다 왕들과 아담을 본 뒤, 2층으로 올라가 12번 전시실의 콜마르 보물을 보고, 박물관이 정한 관람 동선에서도 거의 마지막 방인 20번 전시실의 〈귀부인과 유니콘〉에서 마칩니다. 다섯 곳을 모두 듣는 데는 약 10분이 걸립니다. 스팟 사이를 걷는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되니, 서서 바라볼 시간까지 넣으면 다섯 스팟에 1시간 정도가 듭니다.

모든 스팟은 두 가지 출처와 대조했습니다. 하나는 각 작품이 어느 전시실에 있는지까지 밝혀 둔 박물관 자체의 온라인 소장품 데이터베이스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자료인 위키데이터나 위키백과입니다. 전시실 번호는 2026년 9월 25일에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태피스트리나 반지는 갑자기 대여를 떠날 수 있으니, 현장의 설명판을 최종 기준으로 삼으시고, 저희 정보가 뒤처졌다면 알려 주세요.

스팟 1 / 5 · 지상층, 1번 전시실(프리기다리움)

뱃사공들의 기둥

루테티아의 뱃사공 조합(nautae Parisiaci) · 서기 14–37년 · 석회암, 조각된 블록 4개. 유피테르 블록은 109 × 79 × 79 cm

눈여겨볼 점

  • 맨 위 블록의 케르눈노스. 사슴뿔이 달린 수염 난 머리로, 양쪽 뿔에 갈리아의 목걸이가 하나씩 걸려 있고, 그 위에 그의 이름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세계 어디에서도 이 이름이 이토록 논란의 여지 없이 적힌 곳은 없습니다.
  • 봉헌 블록에서 방패와 창을 들고 행진하는 뱃사공들. 무기를 지닐 권리는 로마가 주는 특권이었고, 이 조합의 위상을 보여 주는 척도였습니다.
  • 방의 벽. 작은 석회암 블록 띠와 납작한 벽돌 층이 번갈아 쌓인 로마식 건축법이며, 그 위를 높이 14미터가 넘는 궁륭이 덮고 있습니다.
  • 냉탕실 북쪽 벽에 아직 남아 있는 조각된 돌 받침 두 개. 위키백과는 이것이 배의 뱃머리 모양이라고 설명합니다.
스크립트 (2:29)

돌을 보기 전에 먼저 위를 올려다보세요. 머리 위의 궁륭은 높이가 14미터가 넘고, 로마인들이 1세기에서 2세기로 넘어갈 무렵에 지었습니다. 이곳은 프리기다리움, 곧 냉탕실이었습니다. 당시 루테티아라고 불리던 로마 시대 파리에서 가장 큰 공중목욕탕의 일부였지요. 사람들은 몸을 씻고, 운동을 하고, 머리를 자르고, 이야기를 나누러 이곳에 왔습니다. 냉탕은 지금도 이 방에 남아 있습니다. 그 목욕탕에서 원래 높이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 곳은 이 방뿐이고, 박물관은 이 방을 둘러싸며 자라났습니다.

이제 조각된 네 개의 블록을 보세요. 이 방보다도 오래된 것입니다. 뱃사공들의 기둥이라 불리는 이 기념물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인 서기 14년에서 37년 사이에 만들어졌고,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입니다. 뱃사공들이란 센강에서 일하던 선주와 상인들의 조합, 나우타이 파리시아키를 말합니다. 라틴어 명문에 따르면, 이들은 지고지대한 유피테르와 황제에게 바쳐 이 기둥을 공개적으로 세웠습니다.

충성스러운 로마식 봉헌처럼 들리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돌 위에 누가 더 올라와 있는지 보세요. 유피테르, 불카누스, 마르스 곁에 로마인들이 데려오지 않은 신들이 서 있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찍고 있는 에수스. 두루미 세 마리가 올라앉은 황소에는 타르보스 트리가라누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맨 위 블록에는 사슴뿔이 달린 수염 난 머리가 있고, 양쪽 뿔에는 갈리아의 목걸이인 토르크가 하나씩 걸려 있습니다. 그 위의 글자는 케르눈노스라고 읽힙니다. 이 신의 이름이 아무런 논란 없이 남아 있는 곳은 이 기둥뿐입니다.

다른 면에서는 뱃사공들이 방패와 창을 들고 행진합니다. 무기를 지니는 것은 로마가 허락한 특권이었으니, 이 조합이 얼마나 힘이 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 전해지는 파리 최초의 단체가 바로 이들입니다.

기둥은 계속 서 있지 못했습니다. 3세기에 블록들이 부서져 시테섬의 벽을 받치는 데 쓰였고, 18세기 초 노트르담 아래를 파던 인부들이 발견할 때까지 그곳에 묻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네 단 가운데 세 단은 위쪽 절반만 남아 있습니다. 온전했다면 높이는 약 5미터 20센티미터였을 것이고, 블록을 어떻게 쌓았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릅니다. 가능한 배열은 64가지나 됩니다.

돌이 오늘날 희게 보이는 것은 2001년에 복원가들이 3세기 동안 쌓인 검은 때를 벗겨 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벽도 2009년에 따로 복원되었는데, 그때 회반죽이 원래 분홍색이었고, 강렬한 파란색의 아주 작은 흔적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 색으로 칠해지고 냉탕에 물이 가득했던 곳, 그것이 원래의 이 방입니다.

스팟 2 / 5 · 지상층, 5번 전시실(노트르담 대성당의 조각)

유다 왕들의 머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조각가들 · 13세기 전반 · 채색 흔적이 남은 돌. 머리 Cl. 22988은 높이 71 cm

눈여겨볼 점

  • 얼굴에 남은 색의 흔적. 머리들은 섬세하게 채색되어 있었고, 몇 점에서는 아직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수염과 곱슬머리, 왕관의 띠. 대성당 아래 광장에 선 사람은 결코 볼 수 없었을 세부까지 정성껏 조각되어 있습니다.
  • 부서진 코와 턱. 그 손상은 혁명이 남긴 것으로, 지금도 돌 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스크립트 (1:59)

눈앞의 얼굴들은 모두 한때 노트르담의 정면에서 파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대성당 서쪽 파사드에는 왕관을 쓴 인물 28명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고, 13세기 전반에 조각되었습니다. 이들은 유다의 왕들, 곧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의 조상들로, 마리아와 그 아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주기 위해 그 자리에 놓였습니다.

혁명기에는 아무도 그렇게 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교회 위에 왕관을 쓴 남자 28명이 있는 것을 보고 프랑스 왕들이라 여겨 끌어내렸습니다. 조각상들은 목이 잘렸고, 머리들은 사라졌으며, 200년 가까이 모두가 그것들이 산산조각 났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다 1977년, 파리 9구 쇼세당탱 거리의 저택 오텔 모로 안뜰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땅을 파다가 조각된 돌을 발견했습니다. 땅속에서 노트르담의 파편 약 400점이 나왔고, 그 가운데 왕들의 머리 21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그곳에 묻은 사람은 장바티스트 라카날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저택을 짓게 한 사람이 그의 형제 조제프였습니다. 박물관은 이것을 20세기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저택을 소유하던 프랑스 대외무역은행이 1980년에 머리들을 박물관에 기증했고, 1년 뒤 이들만을 위한 전시실이 생겼습니다.

이제 가까이 들여다보세요. 수염의 곱슬곱슬한 결에도, 눈꺼풀에도, 왕관의 띠에도 어디 하나 소홀한 조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얼굴들은 파사드의 아주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에서는 그 세부를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조각가들은 그렇게 새겼습니다. 그리고 색을 찾아보세요. 머리들은 채색되어 있었고, 몇 점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손상은 이 이야기의 나머지 절반입니다. 떨어져 나간 코, 깎여 나간 턱, 닳아 버린 뺨. 이것이 혁명이 이들에게 남긴 것이고, 이제는 이들을 이루는 일부이기도 합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은 눈높이로 내려온 13세기 노트르담의 얼굴입니다. 대성당 앞 광장을 오가던 중세 파리 사람들도 이렇게 가까이 서 본 적은 없었습니다.

스팟 3 / 5 · 지상층, 5번 전시실(노트르담 대성당의 조각)

아담

아마도 피에르 드 몽트뢰유, 또는 그의 지휘 아래 제작 · 1260년경 · 채색 흔적이 남은 파리산 석회암, 높이 200 cm

눈여겨볼 점

  • 들어 올린 오른손. 주교관으로 가는 길에 그의 아래를 지나던 성직자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 선 자세. 한쪽 다리에 무게를 싣고 엉덩이를 옆으로 빼고, 다른 손은 무화과 잎 앞으로 내렸습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정숙한 비너스' 자세입니다.
  • 촘촘하게 말린 곱슬머리. 온전히 13세기 파리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입니다.
  • 무화과 잎. 한때 조각상 전체를 덮었던 채색의 마지막 흔적이 여기에 남아 있습니다.
스크립트 (2:14)

왕들과 같은 방에 키 큰 흰 조각상이 서 있는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벌거벗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세에 나체상은 드물었습니다.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파리산 석회암으로 깎은 2미터 높이의 벌거벗은 남자는 고딕 조각가들이 자주 만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담입니다. 왕들처럼 노트르담에서 왔지만, 건물 안쪽에 있던 조각입니다. 남쪽 트랜셉트 안쪽 벽의 출입문 옆에 서 있었고, 짝도 있었습니다. 문 반대편의 하와였는데,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 위, 박공 꼭대기에는 최후의 심판의 그리스도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조각상은 1260년경, 건축가 피에르 드 몽트뢰유가 남쪽 트랜셉트 공사를 맡고 있던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박물관은 아담이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졌을 수도 있고, 적어도 그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단서는 무화과 잎에 있습니다. 또렷하고 생기 있는 그 조각이, 이 박물관에 있는 그의 다른 작품, 생제르맹데프레의 성모 예배당 출입문의 잎 장식과 꼭 닮았습니다.

들어 올린 손을 보세요. 경고입니다. 주교관으로 돌아가던 사제들은 그 문을 지나 그의 바로 아래를 걸었습니다. 최초의 죄인 아담은 그들에게 자신의 타락을, 그리고 그 위에서 그 타락을 구원한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입니다.

이제 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세요. 무게는 한쪽 다리에 실려 있고, 다른 다리는 느슨하며, 엉덩이가 옆으로 빠지고, 왼손은 무화과 잎 앞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이 자세는 고대의 것입니다.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그리스 조각의 정숙한 비너스의 자세이고, 이 아담의 몸이 거의 여성스러워 보일 만큼 곡선을 띠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얼굴에도 어딘가 고전적인 데가 있습니다. 오직 머리카락, 저 촘촘하게 말린 곱슬머리만이 순수한 13세기 파리입니다. 조각가가 고대 조각상을 직접 보았는지, 아니면 스케치북의 그림으로만 알았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늘 흰색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각상 전체가 채색되어 있었고, 그중 일부가 특히 무화과 잎에 남아 있습니다. 혁명 뒤 그는 철거되어 프랑스 기념물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그 박물관이 1816년에 문을 닫자, 있던 건물이 사라진 다른 조각들과 함께 생드니의 석재 창고로 들어갔고, 1887년에야 클뤼니 박물관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뒤 1888년, 그리고 1970년대 말에 다시, 두 차례 크게 복원되었습니다. 경고하는 손은 750년이 넘도록 들려 있습니다.

스팟 4 / 5 · 2층, 12번 전시실(14세기 북유럽 미술)

콜마르 보물

여러 금세공인. 결혼반지는 아마도 이탈리아산 · 13세기–14세기 전반 · 금, 은, 에나멜, 보석: 300점이 넘는 동전과 장신구 약 50점. 결혼반지는 높이 3.5 cm

눈여겨볼 점

  • 꼭대기에 작은 육각형 건물이 얹힌 결혼반지. 금 세선 세공 아치와 에나멜 피라미드 지붕이 있고, 지붕에는 행운을 빈다는 뜻의 히브리어 '마젤 토브'가 들어가 있습니다.
  • 끝내 완성되지 않은 작은 열쇠 장신구. 주조할 때 생긴 원뿔 모양 금속이 아직 붙어 있습니다.
  • AMOR, LIEB, HAIL, ANCH라는 글자가 들어간 허리띠 장식판. 마지막 말은 '어린 안나'를 뜻하는 안헨일 수도 있으며, 이 허리띠를 받을 여성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사파이어, 루비, 가닛, 진주를 박은 네잎 모양 브로치. 13–14세기 보석 세공인들이 즐겨 만든 '보석 꽃다발'입니다.
스크립트 (2:23)

이 유물들은 아주 작습니다. 반지는 높이 3.5센티미터, 열쇠는 5센티미터가 채 안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500년 동안 벽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1863년, 알자스 지방 콜마르의 옛 유대인 구역에서 집을 고치던 인부들이 벽을 열었다가 숨겨진 보물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동전 300점 이상, 그리고 장신구와 금세공품 약 50점으로, 13세기부터 14세기 전반에 걸친 것이며 대부분은 14세기 전반의 것입니다. 몇 점은 누가 기록을 남기기도 전에 발견자들이 팔아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것의 대부분은 1923년에 이 박물관이 사들였습니다.

왜 벽 속에 있었을까요. 이것이 이야기의 어두운 부분입니다. 1347년부터 1352년 사이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고, 유대인들이 그 책임을 뒤집어쓰고 거듭된 박해를 당했습니다. 이 보물은 콜마르의 어느 유대인 가족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서둘러 집을 떠나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숨겨 둔 것을 찾으러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꼭대기에 작은 건물이 얹힌 반지를 찾아보세요. 유대인의 결혼반지로,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에 들며, 1300년경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건넸고, 신부는 그날 하루만 그것을 끼었습니다. 작은 건물은 여섯 면으로 되어 있고, 금 세선 세공 아치와 에나멜 피라미드 지붕을 갖추었으며, 두 가지를 한꺼번에 상징합니다. 부부의 새 보금자리, 그리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지붕의 히브리 문자는 마젤 토브, 행운을 빈다는 말을 이룹니다.

보물 가운데는 작은 열쇠도 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는 유대인 여성은 무거운 것을 지니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귀중품은 궤에 넣어 잠그고, 그 열쇠들은 상자에 보관한 뒤, 그 상자를 여는 작은 열쇠를 장신구처럼 몸에 지녔습니다. 이 열쇠는 이런 종류로는 남아 있는 것 가운데 아마 가장 오래된 것이고,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주조하고 남은 원뿔 모양 금속이 그대로 붙어 있고, 거친 가장자리도 끝내 줄로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허리띠가 있습니다. 에나멜을 입힌 작은 장식판들을 이어 놓은 것으로, 한때 비단 리본에 꿰매어 붙어 있었습니다. 적힌 글자는 AMOR와 LIEB, 둘 다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건강을 뜻하는 HAIL, 그리고 ANCH. 이것은 어린 안나를 뜻하는 안헨의 줄임말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사랑의 징표였을 것이고, 어쩌면 결혼 선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라면, 그 이름은 허리띠 위 네 글자로 살아남은 셈입니다.

스팟 5 / 5 · 2층, 20번 전시실(귀부인과 유니콘)

귀부인과 유니콘

파리의 화가 장 디프르가 밑그림을 그림. 직조공은 미상 · 1500년경 · 태피스트리 6점, 양모와 비단. 〈나의 유일한 소망〉 377 × 473 cm

눈여겨볼 점

  • 〈시각〉의 거울. 유니콘이 들여다보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옆얼굴은 유니콘의 것이 아닙니다.
  • 〈미각〉의 붉은 바탕 위 동물들 사이에 있는, 아직 뿔이 자라지 않은 새끼 유니콘.
  • 천막 위 mon seul désir(나의 유일한 소망)라는 글귀 양옆의 A와 I. 앙투안 르 비스트와 그의 아내 자클린의 머리글자일 수도 있습니다.
  • 파란 잎. 원래는 초록으로 짜였지만, 앞면에서는 염료의 노란색이 바래 버렸습니다. 태피스트리 뒷면에는 초록이 남아 있습니다.
스크립트 (3:09)

이 방을 빙 둘러 태피스트리 여섯 점이 걸려 있고, 모두 같은 붉은 바탕입니다. 어느 작품에서나 젊은 여인이 꽃이 핀 파란 섬 위에 서 있고, 한쪽에는 사자, 다른 쪽에는 유니콘이 있으며, 주위의 붉은 바탕에는 토끼, 여우, 어린 양, 새, 원숭이가 흩어져 있습니다. 1500년경 파리에서 밑그림이 그려졌고, 이 박물관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중 다섯 점은 오감을 나타냅니다. 박물관은 중세 저술가들이 감각에 매긴 순서, 곧 가장 육체적인 것에서 가장 영적인 것의 순서로 이 작품들을 읽습니다. 촉각. 여인은 한 손에 깃발을 들고, 다른 손으로 유니콘의 뿔을 살짝 스칩니다. 미각. 장갑 낀 손에 앉은 앵무새에게 먹이려고 접시에서 과자를 집어 들고, 발치에서는 원숭이가 무언가를 먹고 있습니다. 후각. 여인은 카네이션으로 화관을 엮고, 그 뒤에서 원숭이가 장미를 코에 대고 있습니다. 청각. 여인은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고, 시녀가 풀무를 움직입니다. 시각. 유니콘이 앞다리를 여인의 무릎에 올리고, 여인이 들어 올린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그 거울을 자세히 보세요. 거울에 비친 얼굴은 유니콘의 얼굴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작품입니다. 귀부인은 파란 천막 앞에 서 있습니다. 천막 윗부분에는 몽 쇨 데지르, 나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글귀가 짜여 있고, 한쪽에는 A, 다른 쪽에는 I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시녀는 열린 상자를 내밀고, 귀부인의 두 손은 목걸이에 가 있습니다. 목걸이를 꺼내는 걸까요, 도로 넣는 걸까요? 한 해석은 이것을 여섯 번째 감각, 영혼에 가장 가까운 마음으로 봅니다. 다른 해석은 여섯 점 전체를 궁정풍 사랑의 이야기로 읽습니다. 그 사랑을 넌지시 암시하는 식물과 동물로 가득한 정원 속의 이야기입니다. 두 글자는 앙투안 르 비스트와 그의 아내 자클린의 머리글자일 수도 있습니다.

르 비스트 가문의 문장은 모든 깃발에 들어가 있습니다. 붉은 바탕에 파란 띠, 그리고 은색 초승달 세 개. 이 가문은 파리의 법조계에서 빠르게 출세했고, 그것을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어 했습니다. 주문자는 1500년에 세상을 떠난 장 4세 르 비스트이거나, 그보다 젊은 친척 앙투안입니다. 인물의 밑그림은 화가 장 디프르가 그렸는데, 그는 안 드 브르타뉴 왕비를 위해 필사본 삽화도 그린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짜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브뤼셀, 투르네, 그리고 파리 자체도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태피스트리들은 하마터면 살아남지 못할 뻔했습니다.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814년, 크뢰즈의 부사크성에서입니다. 1841년 역사 기념물 감독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이 작품들을 보고하며 그 운명을 걱정했고, 조르주 상드는 기묘하고 수수께끼 같은 태피스트리에 대해 글을 남겼습니다. 1853년에는 그중 세 점이 부사크 시청 한구석에 둘둘 말린 채 놓여 있고, 쥐와 습기가 가장자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시가 이 연작을 국가에 판 것은 1882년에 이르러서였고, 값은 25,500프랑이었습니다. 손상된 아래쪽 가장자리의 상당 부분은 그 뒤 10년에 걸쳐 새로 짜 넣었습니다. 한 복원가는 스스로 불가능한 빨강이라 부른 색에 두 손을 들고 포기했다고 합니다.

나가기 전에 잎을 보세요. 몇몇은 파란색입니다. 원래는 초록으로 짜였는데, 태피스트리 앞면에서는 그 초록에 섞인 노란색이 바래 버렸습니다. 거의 아무도 볼 일이 없는 뒷면에서는, 초록이 여전히 초록입니다.

독립 가이드 · Chiaro

클뤼니 박물관의 무엇이든 Chiaro로 비춰 보세요.

이 다섯 곳은 시작일 뿐이고, 22개 전시실은 그 너머로 계속 이어집니다. 리모주 에나멜, 생트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 한 장, 조각된 성가대석을 사진으로 찍으면, 앱이 그것이 어느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옮겨 온 것인지 알려 주고, 소리 내어 묻는 다음 질문에도 바로 답해 줍니다.

케르눈노스에게는 왜 뿔이 있나요?왕들의 머리는 누가 묻었나요?mon seul désir는 무슨 뜻인가요?

방문 전에

01

가는 길

28 rue Du Sommerard, 75005 Paris, 라탱 지구에 있습니다. 이곳이 관람객 입구이며, 박물관 서신에도 나오는 6 place Paul Painlevé는 행정상의 주소입니다.

박물관 이름을 딴 역은 지하철 10호선 Cluny–La Sorbonne역입니다. 4호선 Saint-Michel역과 Odéon역도 가깝고, RER B선과 C선은 Saint-Michel–Notre-Dame역에 섭니다. 이 일대에는 21, 27, 38, 47, 63, 86, 87번 버스가 다닙니다.

02

입장권

  • 휴관일은 월요일이고, 1년에 사흘,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5월 1일에도 문을 닫습니다. 그 밖의 날에는 전시실이 9시 30분에 열고 18시 15분에 닫지만, 매표소는 17시 30분에 닫으니 너무 빠듯하게 가지 마세요. 12월 24일과 31일에는 모든 곳이 17시에 일찍 닫습니다.
  • 일부 목요일 저녁에는 21시까지 문을 열고 20시 30분까지 입장권을 팝니다. 야간 개장 날짜는 musee-moyenage.f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매달 첫째 일요일에는 누구나 무료입니다. 18세 미만은 언제나 무료이고, EU 국적이 있거나 EU에 3개월 넘게 거주한 18–25세도 증빙이 있으면 무료입니다. 그 밖의 사람은 입장권을 사야 하며, 현재 요금은 musee-moyenage.fr에 나와 있습니다.
  • 짐은 가볍게 챙기세요. 배낭과 여행 가방은 기내용 크기라도 입구에서 거절됩니다. 40 × 30 × 40 cm 이하의 작은 가방만 들어갈 수 있고, 손에 들거나 몸 앞쪽으로 메야 합니다.
  • 개인 용도의 사진 촬영은 괜찮지만, 플래시와 삼각대, 셀카봉은 안 됩니다.
공식 입장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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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오디오 가이드

클뤼니 박물관의 공식 가이드는 안내 데스크에서 빌리는 멀티미디어 가이드로, 명작 코스와 주제별 관람, 가족 투어를 프랑스어, 프랑스 수어, 영어, 스페인어로 제공합니다. 요금은 4유로, 할인 요금은 2유로이며, 빌리는 동안 신분증을 맡겨야 합니다. 안내 데스크에 신분증을 맡기기 싫으신가요? 위의 녹음 다섯 개는 내 휴대전화와 이어폰만 있으면 들을 수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

자주 묻는 질문

클뤼니 박물관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있나요?

네, 이 페이지의 녹음 다섯 개가 그것으로, 로마 시대 목욕탕에서 유니콘 태피스트리까지 이어집니다. 휴대전화 브라우저에서 재생되고 트랙마다 아래에 전문이 적혀 있으며, 설치할 것은 없습니다. 건물 안 다른 곳에서는 카메라를 작품에 갖다 대기만 하면 Chiaro가 그 이름과 이야기를 알려 줍니다.

클뤼니 박물관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얼마인가요?

박물관의 멀티미디어 가이드는 4유로, 할인 요금은 2유로입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빌리며, 프랑스어, 프랑스 수어, 영어, 스페인어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클뤼니 박물관에서 〈귀부인과 유니콘〉은 어디에 있나요?

위층의 20번 전시실로, 방 이름부터가 이 태피스트리에서 왔습니다. 박물관 동선은 로마 시대 목욕탕과 지상층 전시실을 먼저 지나게 되어 있어서, 유니콘은 관람 막바지에 만나게 됩니다.

클뤼니 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하나요?

네,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5월 1일에도 문을 닫습니다. 나머지 요일에는 9시 30분에 문을 열어 18시 15분에 닫으며, 마지막 입장권은 17시 30분에 판매합니다.

클뤼니 박물관 관람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다섯 스팟에 1시간쯤 걸리고, 그중 녹음이 약 10분입니다. 박물관 전체는 두 개 층에 22개 전시실이 있고 1,500년을 아우릅니다. 전부 보려면 2–3시간을 잡으시길 권합니다.

클뤼니 박물관은 리노베이션 후 다시 문을 열었나요?

네. 소장품을 연대순으로 다시 배치하고 관람객 편의 시설을 위한 새 건물을 더한 긴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2022년 5월 12일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다른 오디오 가이드

Chiaro 제작. 클뤼니 박물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