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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 파리 · 독립 가이드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
다섯 스팟, 무료.

도서실에서 이탈리아 미술관까지, 녹음 다섯 개가 이 탭에서 바로 재생됩니다. 앙드레 부부가 오스만 대로의 저택에 가득 채워 넣은 나머지 모든 것은 사진 한 장만 찍으면 Chiaro가 들려줍니다.

Chiaro 제작.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9:41

엠마오의 저녁 식사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파리

0:00 2:42
스팟 1 / 5

다섯 개의 스팟 · 오디오 11분

다섯 곳, 하나의 동선,
관람 순서대로.

이중 나선 계단은 이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의 중심축으로, 저택 한 채 안의 다섯 작품을 잇습니다. 먼저 도서실에서 렘브란트를 만나고, 그 계단을 올라 꼭대기의 티에폴로 프레스코와 음악가의 갤러리에 있는 베르니니의 청동 교황상으로 갑니다. 그다음 이탈리아 미술관을 가로질러 피렌체 갤러리의 우첼로에서 마지막 방인 베네치아 갤러리의 만테냐까지 이어집니다. 오디오는 다 합해 9분 정도입니다. 방들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 걷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천천히 머무르고 싶다면 다섯 스팟에 40분쯤 잡아 두세요.

아래의 내용은 모두 미술관이 자기 소장품에 관해 공개한 해설을 바탕으로 하고, 다른 참고 자료가 있으면 함께 대조했습니다. 두 자료가 어긋날 때는 근거가 있는 쪽을 따랐고, 각 작품이 걸린 방은 2026년 9월 25일에 확인했습니다. 넬리 자크마르의 유언은 작품마다 걸릴 자리까지 정해 두었지만, 그림은 여전히 전시회에 나가곤 합니다. 방에서 보이는 것이 이 페이지와 다르다면 방이 맞습니다. 저희에게 한 줄만 보내 주시면 페이지를 고치겠습니다.

스팟 1 / 5 · 도서실, 들어서면 정면 벽

엠마오의 저녁 식사

렘브란트 · 1628년경 · 목판에 유채, 39 × 42 cm

눈여겨볼 점

  • 오른쪽의 그리스도. 어두운 옆모습입니다. 광원이 그 뒤에 숨겨져 있어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그림자가 됩니다.
  • 놓치기 쉬운 두 번째 제자. 의자를 넘어뜨리고 그리스도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는데, 어둠 속에 거의 묻혀 있습니다.
  • 왼쪽 안쪽에서 자기만의 작은 불빛 옆에서 일하는 하녀. 기적을 빼고 나면 이것은 여관의 어느 저녁입니다.
  • 크기. 39 × 42 cm. 앙드레 부부가 가장 아낀 렘브란트는 나무판에 그린 작은 그림입니다.
스크립트 (2:42)

지금 계신 곳은 이 집에서 가장 사적인 방입니다. 책이 들어차기 전에는 넬리 자크마르의 침실이었고, 나중에는 그녀와 남편 에두아르 앙드레가 이 방에 들어와 경매 도록을 넘기며 다음에 무엇을 살지 정했습니다. 이 벽에 걸린 모든 것 가운데, 미술관이 정말로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눈앞의 작은 목판 그림입니다. 크기는 39센티미터에 42센티미터. 한 팔에 끼고 다닐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에서 나옵니다. 십자가 처형이 있은 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낯선 나그네와 동행하게 되고,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합니다. 식탁에서 두 사람은 문득 그가 부활한 그리스도임을 알아보고, 그 순간 그는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이 저녁 식사는 그전에도 수많은 화가가 그렸습니다. 1628년 무렵, 스물두 살쯤이던 렘브란트는 그것을 그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을 보세요. 앞쪽에 그리스도가 있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광원이 그의 등 뒤에 숨겨져 있어서, 그리스도는 환하게 빛나는 벽을 배경으로 한 어두운 옆모습이 되고, 빛은 그에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술관은 이 효과를 카라바조와 그 추종자들에게 연결합니다. 명암법을 갈 수 있는 데까지 밀어붙인 것이지요. 대담한 점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그림자로 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두 제자를 보세요. 한 사람은 식탁에 앉은 채 얼굴 가득 빛을 받으며, 겁에 질려 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예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의자를 넘어뜨리고 그리스도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는데, 어둠이 그를 거의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맨 왼쪽, 안쪽 방을 들여다보세요. 하녀 한 사람이 자기만의 작은 불빛 옆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걷어 내면 이것은 여관의 평범한 저녁이고, 미술관의 설명도 바로 그렇게 말합니다.

렘브란트는 이 주제로 몇 번이고 되돌아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도 그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가 한 점 더 있는데, 차분하고 좌우가 대칭이며, 역사화처럼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미술관의 평가로는, 이 초기작만큼 완벽에 이른 판본은 달리 없습니다.

이 그림은 먼 길을 돌아 여기에 왔습니다. 1734년까지는 암스테르담의 빌럼 식스가 소유했고, 그 뒤로 브뤼셀과 파리와 빈의 수집가들을 거쳐, 마침내 화상 샤를 제델마이어가 에두아르 앙드레에게 팔았습니다. 앙드레 부부에게 이것이 첫 렘브란트는 아니었습니다. 에두아르는 이미 1865년에 톨링크스 박사라는 인물을 그린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샀고, 이 작은 장면은 그 뒤에 합류했습니다. 2019년에는 밀라노로 건너가 브레라 미술관에서 카라바조 자신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 옆에 걸렸습니다. 이 그림이 빛을 빌려 온 바로 그 화가 곁이었지요. 그리고 다시 이곳, 앙드레 부부가 앉아 경매 도록을 읽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스팟 2 / 5 · 대계단

콘타리니 빌라에서 환영받는 앙리 3세

잠바티스타 티에폴로 · 1745년경 · 캔버스로 옮긴 프레스코, 7.29 × 4.02 m

눈여겨볼 점

  • 앞쪽에서 몸을 뒤로 젖힌 젊은이. 두 다리가 그려진 액자 밖으로 삐져나와 있습니다. 장면을 관람자의 공간으로 밀어내는 티에폴로의 눈속임 기법입니다.
  • 그려진 건축. 벽에는 실제로 없는, 열린 회랑의 아치와 기둥들입니다.
  • 계단. 프레스코에는 프랑스 왕이 빌라로 올라가는 모습이 담겨 있고, 앙드레 부부가 이 그림을 계단 꼭대기에 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스크립트 (2:19)

계단을 다 올라왔으면 멈춰 서서 벽 쪽으로 돌아서 보세요. 방금 올라온 계단은 이 집의 건축적 놀라움입니다. 대리석과 돌, 철과 청동으로 된 이중 나선이고, 누구나 예상할 한가운데가 아니라 거처의 맨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위의 그림은 바로 이 자리를 위해 골라 온 것입니다.

잠바티스타 티에폴로가 베네토 지방의 전원 저택인 콘타리니 빌라를 위해 그렸고, 미술관의 연대 추정으로는 1745년 무렵입니다. 그림은 1574년에 실제로 있었던 방문을 기록합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아들 앙리 3세는 형 샤를 9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 왕이 되려고 폴란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 파리로 향하던 중 베네치아에 들어가기 전에 콘타리니 가문의 빌라에 들렀습니다. 티에폴로는 이 만남을 아치와 기둥이 그려진 널찍한 회랑에 펼쳐 놓고, 빌라의 식구들이 왕과 그 수행원들을 맞으러 앞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제 앞쪽의 젊은이를 찾아보세요. 몸을 뒤로 젖혔고, 두 다리는 그려진 액자 가장자리를 넘어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공간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티에폴로가 신이 나서 부린 재주입니다. 평평한 벽을 발코니로 바꿔 버리는 눈속임 농담이지요.

에두아르 앙드레와 넬리 자크마르는 1893년 이탈리아 여행 중에 이 프레스코를 발견했고, 같은 빌라의 천장화와 함께 사들였습니다. 베네토의 벽에서 프레스코를 떼어 내 파리의 벽에 다시 붙이는 일은 더디고 고된 작업입니다. 두 점을 떼어 내고, 옮기고, 다시 설치하기까지 1893년 5월부터 1894년 1월까지 여덟 달이 걸렸습니다. 에두아르는 작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9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이 이 그림을 계단 꼭대기에 둔 이유는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프레스코에는 프랑스 왕이 빌라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모습이 담겨 있고, 여러분도 방금 이 계단을 걸어 올라왔으니까요. 1896년, 미술 잡지 가제트 데 보자르는 이보다 프랑스인의 마음에 가까운 티에폴로는 있을 수 없다고 썼습니다. 베네치아의 마지막 거장이 프랑스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렸으니 말입니다. 함께 들여온 천장화는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그곳은 레스토랑이어서, 거기서 점심을 먹으면 이때 함께 사 온 나머지 절반 아래에 앉게 되는 셈입니다.

색이 몇 년 전보다 한결 생생합니다. 2023년 가을부터 1년에 걸친 공사로, 이 프레스코는 방금 올라온 계단의 대리석, 청동과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스팟 3 / 5 · 음악가의 갤러리, 거리 쪽

교황 그레고리오 15세 흉상

잔 로렌초 베르니니 · 1622년 · 청동, 78 × 66 cm

눈여겨볼 점

  • 받침대. 이 흉상의 모든 주조본 가운데 받침대에 문장이 새겨진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 코프(대례 망토) 양쪽에 하나씩 있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교황의 수호성인들이 자수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 옷깃 속으로 깊이 가라앉은 머리. 흉상 전체가 삼각형을 이루어, 자신의 제의 무게에 눌린 노인의 모습이 됩니다.
스크립트 (2:16)

오스만 대로에 오면서 베르니니를 만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기 시대가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꼽았고, 로마에서 교황들을 차례로 섬기며 일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가 여기, 청동으로 와 있습니다. 주인공은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이고, 이 흉상은 넬리 자크마르가 사들인 몇 안 되는 17세기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녀의 마음은 르네상스에 있었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면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1899년 런던에서 열린 스테파노 바르디니의 경매에서 이것을 샀습니다.

그레고리오 15세의 본명은 알레산드로 루도비시로, 볼로냐에서 태어났습니다. 교황 자리에 있었던 기간은 겨우 2년 반 남짓, 1621년 2월부터 세상을 떠난 1623년 7월까지였습니다. 베르니니는 선출 직후 대리석 초상에 착수해 9월에 완성했고, 뒤이어 청동 주조본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대리석 원작은 지금 토론토의 온타리오 미술관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을 본뜬 주조본이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한 단계 낮은 작품처럼 여겨졌습니다. 미술관에 따르면 최근의 연구가 그 평가를 뒤집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중요한 수집가를 위해 베르니니가 직접 끌로 마무리한, 바로 첫 번째 주조본일지도 모르며, 이제는 주요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가 빨리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재활용 덕분입니다. 코프, 곧 무거운 예식용 망토는 그가 1618년에 만든 전임 교황 바오로 5세의 흉상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바꾼 것은 걸쇠와 양옆의 작은 두 인물입니다. 지금 그 둘을 보세요. 한쪽에는 성 베드로, 다른 쪽에는 성 바오로가 교황의 수호성인으로서 자수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머리를 보세요. 옷깃 속으로 낮게 가라앉아서 흉상 전체가 삼각형이 됩니다. 병약한 예순일곱 살의 남자가 직무의 무게에 허리를 굽히고 있지만, 눈만은 아직 또렷하게 깨어 있습니다.

이 초상 덕분에 베르니니는 톡톡히 보상을 받았습니다. 1621년 6월 30일, 이 교황은 베르니니를 그리스도 기사단의 기사로 서임하고 평생 연금을 내렸습니다. 그때 베르니니는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그 뒤로 로마는 그를 일 카발리에레, 곧 기사라고 불렀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시선을 내려 받침대를 보세요. 이 흉상의 모든 주조본 가운데 받침대에 문장이 새겨진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스팟 4 / 5 · 피렌체 갤러리, 들어서면 오른쪽 벽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파올로 우첼로 · 1430–1435년 · 목판에 채색

눈여겨볼 점

  • 가운데의 동굴. 풍경을 둘로 가르고, 양쪽이 저마다 소실점을 따로 가집니다.
  • 초록빛으로 똬리를 튼 용. 고딕 문장에서 빠져나온 짐승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 왼쪽의 공주. 붉은색의 납작한 윤곽이 메달 속 인물 같고, 그 뒤로는 원근법에 따라 펼쳐진 들판이 있습니다.
스크립트 (1:57)

넬리 자크마르는 이 방을 일종의 개인 예배당처럼 꾸몄습니다. 성가대석과 제단화, 장례 기념물을 들이고, 자신이 가장 사랑한 피렌체 그림들을 걸었는데, 그중에는 보티첼리와 페루지노의 성모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어떤 그림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미술관의 답은 분명합니다. 들어서서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 미술관이 오래전부터 이탈리아 컬렉션에서 가장 희귀한 작품이자 걸작이라고 불러 온 그림입니다.

파올로 우첼로가 1430년에서 1435년 사이에 그렸습니다. 주제는 오래된 전설입니다. 용이 왕의 딸을 막 잡아먹으려는 순간, 성 게오르기우스가 말을 타고 달려와 창으로 용을 꿰뚫습니다. 이 이야기는 동방에서 건너왔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그것을 이교에서 풀려난 교회의 모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목판 그림이 기묘한 것은 한 화면에 그림 두 개가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물들은 깃발과 문장의 고딕 세계에 속합니다. 왼쪽의 공주는 메달에 찍힌 인물처럼 납작한 윤곽입니다. 초록빛으로 몸을 감은 용은 문장에서 기어 내려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뒤를 보세요. 들판과 언덕은 원근법에 따라 펼쳐져 있고, 이쪽이 그림의 새로운 절반입니다. 그리고 가운데의 커다란 동굴이 그 풍경을 둘로 가르는데, 양쪽이 저마다 소실점과 깊이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이런 복잡함이 우첼로다운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옛이야기를, 공간을 짓는 아주 새로운 방식 앞에 무대처럼 올려놓은 것이지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성 게오르기우스를 알고 계신다면, 이 그림이 먼저입니다. 런던의 그림은 1470년 무렵에 그려졌고, 이쪽은 둘 가운데 더 이르고 더 고요한 작품입니다.

넬리 자크마르가 이 그림을 처음 본 곳은 피렌체, 그녀가 가장 아끼던 골동품상의 저택이었습니다. 몹시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림이 이탈리아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기다렸습니다. 1899년 그림이 런던 경매에 나오자 그녀는 거기서 샀습니다. 방금 지나온 베르니니를 산 것과 같은 해, 같은 도시에서였습니다. 미술관의 걸작은 런던의 경매장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 셈입니다.

스팟 5 / 5 · 베네치아 갤러리, 들어서면 왼쪽 벽

에케 호모

안드레아 만테냐 · 1500년경 · 캔버스에 유채, 54 × 42 cm

눈여겨볼 점

  • 위쪽 두 모서리에 핀으로 꽂아 둔 것처럼 그려진 종이 쪽지 두 장. Crucifige eum, tolle eum.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를 끌고 가라.
  • 후광. 투명해서 그 너머의 어두운 배경이 그대로 비쳐 보입니다.
  • 목에 둘러 앞에서 매듭지은 밧줄, 그리고 가슴 앞에서 엇갈린 채 묶인 두 손목.
  • 오른쪽, 주황색 터번을 쓴 늙은 얼굴. 입을 벌린 채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스크립트 (2:16)

여기는 이탈리아 미술관의 마지막 방이자, 에두아르 앙드레 자신의 취향이 가장 짙게 밴 방입니다. 주변의 수집가들이 너나없이 피렌체를 원할 때, 그는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를 원했고, 이 방은 그것으로 가득합니다. 벨리니, 크리벨리, 카르파초. 들어서서 왼쪽 벽에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지만 매서운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습니다.

에케 호모는 이 사람을 보라는 뜻입니다. 고문당한 그리스도를 군중 앞에 내보이며 빌라도가 한 말이지요. 만테냐는 이 그림을 1500년 무렵, 말년에 그렸고, 15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여러분을 얼마나 가까이 끌어당기는지 보세요. 그리스도가 반신상으로, 벗은 몸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미술관은 이 주제에서 이것이 극히 드문 일이라고 짚습니다. 몸에는 채찍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손목은 묶였고, 목에는 밧줄이 둘러져 앞에서 매듭지어져 있어 마치 목줄 같습니다. 후광은 투명해서 그 너머가 그대로 보입니다.

이제 그의 어깨 주위로 몰려든 얼굴들을 보세요. 두 남자가 그에게 손을 얹어 붙잡고 있습니다. 오른쪽, 주황색 터번 아래에는 입을 벌린 늙은 얼굴이 있는데, 늙은 여인이라고들 합니다. 왼쪽에는 히브리 문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글자로 뒤덮인 머리쓰개를 쓴 남자가 있습니다. 그 뒤 어스름 속에도 얼굴들이 더 있습니다. 미술관에 따르면, 분노와 죽이고 싶은 욕망을 보여 주려고 이토록 캐리커처에 가까운 얼굴을 그린 화가는 만테냐 이전에 없었습니다. 이만큼 가까이 서 있으면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제 위쪽 두 모서리의 종이 쪽지 두 장을 읽어 보세요. 핀으로 꽂아 둔 것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Crucifige eum, tolle eum.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를 끌고 가라.

색은 거의 그리자유, 곧 회색조입니다. 회색과 창백한 살빛을 얇게 입혀서, 인물들이 고대 조각처럼 돌을 깎아 만든 듯 보입니다. 오랫동안 그 강렬함이 오히려 그림에 불리하게 작용해, 사람들은 이것이 만테냐의 작품이기는 한지 의심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두 번의 전시회를 거치고 나서야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처음의 바탕을 그대로 간직한 것으로 보이고 바니시도 칠해져 있지 않아서, 표면은 만테냐가 남긴 그대로에 가깝습니다. 밧줄과, 속이 비치는 후광과, 그려진 종잇조각 두 장이 지금도 같은 말을 외치고 있습니다.

독립 가이드 · Chiaro

자크마르앙드레 안의 무엇이든 Chiaro로 비춰 보세요.

다섯 점은 앙드레 부부가 사들인 것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회화 갤러리의 샤르댕, 그랑 살롱의 우동 흉상, 피렌체 갤러리의 보티첼리 성모에 휴대폰을 대 보세요. 앱이 작품을 알아보고, 그것이 어떻게 오스만 대로까지 오게 되었는지 들려주고, 여러분의 질문이 이어지는 한 그 방에서 계속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왜 그림자 속에 있나요?프레스코는 어떻게 옮기나요?넬리 자크마르는 누구였나요?

방문 전에

01

가는 길

158 boulevard Haussmann, 75008 Paris. 샹젤리제 거리와 대형 백화점들에서 조금만 걸으면 됩니다. 저택은 대로변 건물 선에 맞춰 서 있지 않고 안쪽으로 물러나 있으니, 늘어선 건물 정면이 끊기는 곳을 찾으세요.

지하철은 9호선과 13호선이 가장 가까운 세 역, 미로메닐, 생필리프 뒤 룰, 생토귀스탱에 섭니다. RER A선으로 오신다면 샤를 드 골–에투알에서 내려 걸어오세요. 버스는 22, 28, 43, 52, 54, 80, 83, 84, 93번이 모두 근처를 지나고, 차로 오시는 분은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24시간 운영 오스만-베리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02

입장권

  • 쉬는 날이 없습니다. 공휴일을 포함해 1년 내내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엽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후 6시, 금요일은 오후 10시, 주말은 오후 7시에 닫고, 마지막 입장은 폐관 30분 전입니다.
  • 매월 첫째 일요일 무료입장은 기대하지 마세요. 이 미술관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며 그 제도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7세 미만 어린이와 몇몇 지정된 대상은 증빙을 보이면 무료입니다.
  • 기획전 기간에는 같은 입장권으로 저택과 전시를 모두 볼 수 있고, 온라인으로 산 입장권에는 15분 단위의 입장 시간대가 붙습니다. 예약은 필수가 아니지만, 현장에서 사면 매표소에서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 여행 가방은 입구에서 거절되고 맡길 곳도 없습니다. 비밀번호식 사물함은 45 × 28 × 28 cm로 작은 배낭 정도는 들어갑니다. 플래시 없는 사진 촬영은 관내 어디서나 괜찮습니다.
공식 입장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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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오디오 가이드

매표소에서 5유로를 내면 미술관 자체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수 있습니다. 10개 언어로 상설 컬렉션에 관해 약 1시간 30분 분량의 해설을 담고 있고, 온라인 예매에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크 페랑이 안내하는 저택 투어가 들어 있는 미술관 관람 앱은 무료입니다. 그 앱도, 다섯 스팟을 다루는 이 페이지도 무료이니, 유료 가이드는 1시간 30분을 다 듣고 싶을 때 주로 제값을 합니다. 저희 다섯 점 밖의 작품 하나가 궁금하다면, 사진을 찍으면 Chiaro 앱이 답해 줍니다.

공식 사이트 →

자주 묻는 질문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있나요?

미술관 자체의 관람 앱이 무료이고, 이 페이지도 무료입니다. 브라우저에서 재생되는 녹음 다섯 개가 있고, 각 녹음 아래에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저택 안의 다른 그림이나 흉상, 장식장은 사진을 찍으면 Chiaro 앱이 설명해 줍니다.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얼마인가요?

5유로입니다. 상설 컬렉션에 대해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포함한 10개 언어로 약 1시간 30분 분량을 들을 수 있고, 기획전 해설은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제공됩니다. 온라인 예매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는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어디에 있나요?

도서실에서 들어서자마자 마주 보이는 벽에 있습니다. 이 방은 도서실이 되기 전에 넬리 자크마르의 침실이었고, 관람 동선에서는 대계단과 이탈리아 미술관보다 앞에 나옵니다.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은 월요일에도 여나요?

네, 월요일은 평범한 개관일입니다. 공휴일을 포함해 1년 내내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월요일에는 목요일까지와 마찬가지로 오후 6시에 닫습니다. 금요일은 오후 10시, 주말은 오후 7시까지입니다. 둘 다 금요일인 2026년 크리스마스와 2027년 새해 첫날에는 오후 6시에 닫습니다.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은 매월 첫째 일요일에 무료인가요?

아닙니다. 이 미술관은 프랑스 학사원을 대신해 민간 기업 Culturespaces가 운영하며, 파리의 많은 미술관이 시행하는 첫째 일요일 무료입장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무료입장 대상은 7세 미만 어린이, 동반자와 함께 오는 장애인 관람객, 그리고 일부 직업 관련 카드 소지자입니다.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관람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여기 소개한 다섯 스팟은 감상까지 포함해 약 40분이고, 그중 듣는 시간은 9분입니다. 미술관 자체의 안내로는 상설 컬렉션 전체에 1시간 30분, 기획전에 약 45분이 더 걸립니다.

다른 오디오 가이드

Chiaro 제작.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