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타워브리지 · 런던 · 독립 가이드

타워브리지 오디오 가이드,
다섯 스팟, 무료.

고딕풍 석재를 두른 강철 뼈대. 1894년에 개통했고, 위쪽 보행로는 만조 때 템스강 수면에서 43.5미터 높이에 걸려 있습니다. 강변에서 증기기관까지 귀로 따라간 다음, 리벳이든 문장이든 지나가는 배든 사진을 찍어 Chiaro에게 무엇인지 물어보세요.

Chiaro 제작. 타워브리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9:41

타워 워프에서 보는 다리 전체

타워브리지, 런던

0:00 2:24
스팟 1 / 5

다섯 개의 스팟 · 오디오 12분

다섯 장소, 하나의 동선,
관람 순서대로.

타워브리지는 물가에서 볼 때 가장 잘 이해됩니다. 그래서 이 셀프 가이드 오디오 투어는 다리 서쪽, 런던탑 아래 강변 산책로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다리 전체가 한 시야에 들어오고, 표를 보여 달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두 번째 스팟은 북쪽 진입로 위, 가로등이 늘어선 공공 보도입니다. 유료 구간은 거기서부터 다리의 공식 동선을 따라갑니다. 북탑 서쪽의 매표소(Ticket Office)로 들어가 탑의 계단 206개나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고, 강 위 높이 걸린 서쪽 보행로를 건넌 뒤, 남탑으로 내려와 바닥의 블루 라인을 따라 남쪽 진입로 아래 빅토리아 시대 증기기관까지 갑니다. 관람은 거기서 끝납니다. 듣는 시간은 모두 합쳐 10분 남짓이고, 오르내리는 것을 빼면 걷는 곳은 다리와 양쪽 진입로뿐입니다.

이 페이지의 운영 시간, 요금, 입장 규정은 2026년 9월 26일에 다리를 소유한 자선단체 City Bridge Foundation의 사이트 towerbridge.org.uk에서 옮겨 왔고, 녹음에 나오는 연도와 치수는 하나하나 또 다른 독립 자료와 맞춰 보았습니다. 다만 이곳은 지금도 일하는 다리입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배가 지나가느라 도로가 올라갈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출 수도 있습니다. 당일 파란 제복을 입은 웰컴 호스트(Welcome Host)가 이 페이지와 다른 말을 하면, 그분의 말을 따르세요.

스팟 1 / 5 · 북쪽 강변, 런던탑 아래 강변 산책로, 다리 서쪽. 공공장소이며 표가 필요 없습니다

타워 워프에서 보는 다리 전체

브리지 하우스 에스테이츠의 의뢰로 시티의 건축가 호레이스 존스(1819–1887)와 엔지니어 존 울프 배리(1836–1918)가 설계 · 1886년 4월 22일부터 1894년까지 건설, 1894년 6월 30일 개통 · 콘월산 화강암과 포틀랜드석으로 감싼 강철 골조. 교대를 포함한 길이 290미터, 탑 높이 65미터

눈여겨볼 점

  • 각 탑에서 차도 아치 양옆 바로 위에 붙은 작은 파란 상자. 새집처럼 보이지만, 안에 있는 부채꼴 톱니(쿼드런트)의 끝을 덮는 덮개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다리가 닫혀 있을 때 그 끝이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 탑에서 양쪽 강변으로 늘어진 연한 파란색 쇠사슬. 바깥쪽 구간은 도로를 매단 현수교이고, 들리는 것은 가운데뿐입니다.
  • 탑 꼭대기의 문장. 차도에서 63미터 가까이 위에 있으며 금박을 입혔습니다.
  • 탑 꼭대기 사이에 걸린 보행로는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이따가 서쪽 보행로를 건너게 됩니다.
스크립트 (2:24)

런던탑의 오래된 돌벽을 등지고 하류 쪽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이 거대한 기계 전체가 한 화면에 들어옵니다. 물속에 선 두 개의 탑, 그 꼭대기 사이에 걸린 보행로 한 쌍, 그리고 양쪽으로 강변을 향해 휘어 내려가는 연한 파란색 쇠사슬. 이번 산책에서 만날 모든 것이 지금 눈앞에 있으니, 1분만 천천히 바라보세요.

먼저 의상 이야기입니다. 저 탑들은 석조 건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콘월산 화강암과 포틀랜드석 밑에는 강철 뼈대가 있습니다. 다리 측의 설명에 따르면, 돌은 강철 구조를 보호하고 다리를 더 보기 좋게 만들려고 입힌 것입니다. 이 위장은 공사의 조건이었습니다. 1885년 의회법은 설계가 등 뒤의 요새, 런던탑의 건축과 어울려야 한다고 정했고, 다리의 공식 역사는 이 고딕 차림이 런던탑에 이렇게 가까운 다리라면 어떤 것이든 못마땅해한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답이었다고 전합니다.

이 다리를 그린 사람은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공사는 1886년 4월 22일에 시작되었고, 시티의 건축가 호레이스 존스는 1887년 5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동료 엔지니어 존 울프 배리가 일을 끝까지 이끌었고, 배리의 건축 조수 스티븐슨이 존스가 구상한 수수한 벽돌 외관을 지금 보이는 화려한 빅토리아 고딕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구조를 읽어 봅시다. 이것은 다리 하나가 아니라 셋입니다. 양쪽 강변으로 늘어진 쇠사슬은 현수교 구간을 떠받칩니다. 두 탑 사이의 도로가 들리는 부분, 도개교입니다. 그리고 꼭대기의 보행로는 각 탑에서 뻗어 나온 캔틸레버로 지어졌다가, 1960년에 케이블이 더해지면서 이것도 현수교가 되었습니다.

모양보다 더 많이 바뀐 것은 색입니다. 1894년 개통 당시 철골은 밝은 초콜릿 갈색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군함 같은 회색이 되었고, 1977년에는 여왕의 즉위 25주년, 실버 주빌리를 맞아 빨강, 하양, 파랑으로 칠해졌습니다. 지금의 파랑과 하양은 2008년에 시작한 재도장에서 나온 것으로, 그때 옛 페인트를 금속 바탕까지 모두 벗겨 냈습니다.

모두가 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894년 신문 『폴 몰 가제트』는 이 다리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못생긴 공공 건축물이라 불렀고, 건축가 헨리 히스코트 스테이섬은 싸구려 같은 데다 자기 구조에 대한 사실을 속인다고 비난했습니다. 속인다는 점에서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논쟁에서 진 쪽은 그였습니다.

다리로 걸어가기 전에 하나만 더. 각 탑에서 차도 아치 양옆 바로 위에 있는 작은 파란 상자를 찾아보세요. 안에 있는 부채꼴 톱니의 끝을 덮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다리가 닫혀 있을 때 그 끝이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맨 위, 차도에서 63미터 가까이 올라간 곳에서 탑 꼭대기의 문장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스팟 2 / 5 · 북쪽 진입로, 북탑 앞 가로등이 늘어선 보도. 누구나 다니는 공공 도로이며 무료입니다

가로등으로 위장한 굴뚝

호레이스 존스와 존 울프 배리의 설계. 북쪽 진입로는 존 잭슨이 도급을 맡아 건설 · 북쪽 진입로 1887년 2월 착공, 다리 개통 1894년 · 진입로 가로등 사이에 선, 칠을 한 주철 기둥. 북쪽 진입로는 길이 1,260피트, 난간 사이 폭 60피트

눈여겨볼 점

  • 가로등 사이에 딱 하나, 꼭대기에 등이 없는 키 큰 파란 기둥. 이것이 굴뚝으로, 발밑 아치 속에 있던 위병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 도로 옆으로 내려가는 현수 쇠사슬. 강변에서 탑까지의 구간이 여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 북탑 아치 너머로 보이는 두 탑 사이의 도로. 저것이 두 장의 도개교 상판으로, 다리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부분입니다.
스크립트 (2:28)

여기는 북쪽 진입로, 타워 힐에서 다리 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보도는 공공장소라 여기서는 아무도 무언가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가로등을 보세요. 대부분 등을 얹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선 키 큰 파란 기둥 하나는 등이 없고, 애초에 필요했던 적도 없습니다. 굴뚝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근 도로 밑에는 아치들이 있고, 그 안에는 바로 옆 런던탑을 지키던 병사들, 로열 퓨질리어스 연대의 위병소가 있었습니다. 방에는 난방이 필요했고 연기는 어딘가로 빠져나가야 했지만, 평범한 빅토리아 시대 굴뚝을 세웠다가는 고딕 다리를 망쳤을 겁니다. 그래서 굴뚝에 거리 시설물의 옷을 입혔습니다. 다리의 공식 역사는 이를 두고 버젓이 드러난 채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병사들은 나중에 덧붙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1885년 다리 건설을 승인한 법은 런던탑을 지휘하는 최고위 장교에게 언제든 다리를 점거할 권리를 주었고, 울프 배리는 한때 구조물을 대포를 설치할 수 있게 만들 계획도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대포는 대부분 없던 일이 되었지만, 굴뚝은 남았습니다.

이제 앞쪽, 북탑의 아치 너머로 두 탑 사이의 도로를 보세요. 저 구간이 도개교, 영어로 배스큘인데, 시소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온 말입니다. 상판 하나하나가 중심에서 벗어난 축을 기준으로 도는데, 짧은 쪽 끝에는 400톤이 넘는 평형추가 교각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균형은 강 쪽이 겨우 5톤에서 7톤 더 무겁도록 맞춰져 있어서, 조작하는 사람이 통제력을 잃지 않습니다. 돌리는 일은 지름 1미터쯤 되는 톱니바퀴 8개가 맡습니다.

같은 법은 강의 배가 먼저라고도 정했습니다. 돛대나 상부 구조물이 30피트 이상인 등록 선박이라면 24시간 전에 알리기만 하면, 낮이든 밤이든 무료로 도로를 들어 줍니다. 첫해에는 그렇게 연 횟수가 6,000번을 넘었고, 오늘날에는 하루 평균 두세 번입니다. 보수 공사로 배가 지날 높이가 낮아질 때는, 배에 대한 경고로 다리에 건초 한 묶음을 매달아야 한다고 지금도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딱 한 번, 일이 어긋난 적이 있습니다. 1952년 12월 30일, 앨버트 건터라는 운전기사가 78번 버스를 몰고 덜리치 쪽으로 다리를 남쪽으로 건너고 있었는데, 앞의 도로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감시원이 종을 울리고 차단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도개교는 교대 근무자가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건터는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시속 12마일쯤으로 버스는 틈을 뛰어넘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건너편 상판 위로 3피트가량 떨어졌습니다. 그가 받은 것은 하루 휴가와 10파운드. 그 돈을 어디에 쓰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5파운드는 내 몫, 5파운드는 마누라 몫.

스팟 3 / 5 · 북탑. 서쪽 매표소에서 상층 보행로(High-Level Walkways)로 올라가는 계단이며,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북탑 계단과 강철 뼈대

존 울프 배리의 설계에 따라 윌리엄 애롤 경의 회사(Sir William Arrol & Co.)가 강철 공사를 맡았고(1889년 5월 계약), 헨리 마크 브루넬이 보조 엔지니어, 에드워드 크러트웰이 상주 엔지니어로 일함 · 강철 공사 1889–1894년, 탑 안 계단 1894년 4월 완공 · 처음의 갈색 칠이 남은 리벳 이음 강철. 바깥은 화강암과 포틀랜드석, 안쪽은 벽돌로 받침. 북탑 꼭대기까지 계단 206개

눈여겨볼 점

  • 거더마다 줄지어 박힌 리벳 머리. 다리 전체에 1,300만 개가 넘습니다.
  • 계단 철물에 칠한 갈색. 1894년 다리의 원래 색으로, 바깥은 세 번이나 색이 바뀌었는데도 여기에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강철 뒤의 노란 벽돌. 강에서 본 화강암은 겉에 붙인 마감재일 뿐이고, 안쪽은 벽돌로 받쳐 놓았습니다.
스크립트 (2:17)

북탑 서쪽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서부터 관람은 위로 올라갑니다. 이 탑 꼭대기까지 계단 206개. 계단으로 가든 엘리베이터를 타든, 층계참에서 한번 멈춰 서서 이 건물을 실제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세요.

돌이 아닙니다. 강에서 보면 이 탑은 성의 망루 같았습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화강암이 가리고 있던 것이 보입니다. 리벳으로 이은 강철 거더, 그리고 그 뒤의 노란 벽돌. 탑은 강철 골조로 세운 뒤 바깥은 화강암과 포틀랜드석으로 입히고 안쪽은 벽돌로 받쳤습니다. 탑마다 네 모서리에는 길이가 119피트가 넘는 팔각형 강철 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제 색을 봅시다. 주변 계단의 철물은 갈색인데, 복원한 사람의 변덕이 아닙니다. 1894년 4월에 완성된 계단에 칠한 다리 본래의 색, 밝은 초콜릿 갈색이고,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좋아한 색이었다고도 합니다. 바깥은 그 뒤로 회색이 되었다가, 빨강, 하양, 파랑이 되었고, 지금은 파랑과 하양입니다. 여기 안에서는 갈색이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리벳을 세고 싶다면 세어 보세요. 끝내지는 못할 겁니다. 다리 전체에 1,300만 개가 넘고, 탑이 올라가는 동안 리벳공 조들이 하나하나 박아 넣었습니다. 강철은 윌리엄 애롤의 회사가 댔는데, 1889년 5월에 강철 1만 1,000톤과 장식용 주철 1,200톤, 모두 합쳐 약 8킬로미터 분량의 금속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습니다. 애롤은 9살에 면방직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이 일을 맡을 무렵 그의 회사는 1879년에 무너진 테이 철교를 다시 짓고, 포스 교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테이 철교 참사는 이 탑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설계는 제곱피트당 56파운드의 풍압을 견뎌야 했는데, 그 참사 뒤에 생긴 규정입니다.

수석 엔지니어는 존 울프 배리였고,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의 둘째 아들 헨리 마크 브루넬이 그를 보조했으며, 에드워드 크러트웰이 상주 엔지니어였습니다. 공사에는 8년, 주요 시공사 5곳, 매일 현장에 나온 인부 432명이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철제 케이슨 안에서 기초를 파낸 잠수부들도 있었고, 첫 케이슨은 강바닥 밑으로 거의 8미터까지 가라앉혔습니다. 들어간 벽돌은 약 3,100만 개. 크러트웰은 사망 사고가 단 10건뿐이었다고 기록했는데, 이 '단'은 칭찬으로 쓴 말이었습니다.

마침내 강철 구조의 두 반쪽이 강 위에서 만났을 때, 배리는 일기에 마지막 리벳들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고 적었습니다. 그 이음매는 지금도 다리 안에 있습니다. 그곳을 향해 계속 올라가세요.

스팟 4 / 5 · 상층 보행로(High-Level Walkways) 가운데 서쪽 보행로, 상류의 런던탑과 세인트 폴 대성당 쪽을 보고

서쪽 보행로에서 바라본 상류

호레이스 존스와 존 울프 배리. 거더는 윌리엄 애롤 경의 회사, 현수 케이블은 1960년에 추가 · 1894년 6월 완공, 1910년 폐쇄, 1982년 재개방, 2014년 유리 바닥 추가 · 강철 격자 거더. 만조 때 템스강에서 43.5미터, 차도에서 33.5미터 높이

눈여겨볼 점

  • 스카이라인 위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금빛 꼭대기를 인 모뉴먼트.
  • 풀 오브 런던에 정박한 HMS 벨파스트와 그 너머의 런던 브리지. 이 다리가 뱃길을 열어 두려고 지어진 바로 그 강 구간입니다.
  • 보행로에 뚫어 놓은 작은 촬영용 창. 바로 이 풍경을 찍으라고 만든 것입니다.
스크립트 (2:18)

지금 여러분은 만조 때 템스강에서 43.5미터, 차도에서 33.5미터 높이, 서쪽 보행로 안에 있습니다. 눈앞의 풍경이 바로 이 다리가 열리는 이유입니다. 상류를 보세요.

여기서 상류의 다음 다리, 런던 브리지까지의 물길을 어퍼 풀 오브 런던이라고 부릅니다. 이 다리를 계획할 때, 건설을 승인한 법은 그 구간 북쪽 강변에 가동 중인 독과 부두, 선창 11곳, 남쪽 강변에 선창 20곳을 적어 두었습니다. 짐수레가 건널 만큼 낮은 고정 다리를 놓으면 이곳들은 바다와 끊기고 맙니다. 그래서 도로는 들려야 했고, 도로가 올라가 있는 동안에도 걷는 사람들이 건널 길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곳입니다. 발아래 풀 오브 런던에는 지금 HMS 벨파스트가 정박해 있습니다.

스카이라인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라가 봅시다. 돔은 세인트 폴 대성당입니다. 그 오른쪽, 꼭대기가 금빛인 기둥은 런던 대화재 기념탑, 모뉴먼트입니다. 강 건너 높은 굴뚝은 테이트 모던이고, 더 멀리 바늘처럼 선 것은 BT 타워입니다. 런던탑은 오른쪽 아래 낮게 앉아 있습니다.

이 보행로의 첫 생애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1894년에 열렸다가 1910년에 이용객이 없어 닫혔습니다. 그 계단을 다 올라가느냐, 길에서 도개교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느냐 하는 선택 앞에서 런던 사람들은 기다리는 쪽을 골랐습니다. 그나마 드나든 사람들 탓에 보행로는 소매치기와 매춘부가 모이는 곳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72년 동안 닫혀 있다가, 다리가 관광 명소가 된 1982년에 다시 열렸습니다.

이 보행로의 모양은 타협의 결과입니다. 호레이스 존스는 처음에 탑 꼭대기 사이에 커다란 아치를 그렸는데, 배의 돛대와 삭구가 부딪칠 수 있다는 반대가 나오자 울프 배리는 1885년에 밑면이 평평한 형태로 바꾸었습니다. 보행로는 각 탑에서 뻗어 나온 캔틸레버 두 개로 지어졌고, 1960년에 보강용 현수 케이블이 더해져 현수교가 되었습니다. 보행로는 또 발아래 다리 전체를 떠받치는 케이블도 지고 있습니다.

아래 틈에 얽힌 이야기 두 가지. 처음 규정에서는 각 보행로 한가운데 검은 공이 매달려 있으면, 다리를 열어 줄 수 없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1912년 8월 10일, 비행사 프랜시스 매클린이 수상 비행기를 몰고 도개교와 이 보행로 사이를 그대로 뚫고 지나가, 하룻밤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2014년부터 이 바닥의 일부는 유리입니다. 패널 하나가 코끼리 한 마리나 런던의 검은 택시 두 대를 견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용기가 있다면 올라서 보세요. 조금 전 걸어 올라온 도로가 신발 아래 33.5미터에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기관실, 엘스윅의 W. G. 암스트롱 미첼 사(Sir W. G. Armstrong, Mitchell & Co.)가 존 울프 배리와 함께 설계하고, 해밀턴 렌들과 새뮤얼 홈프리의 감독 아래 설치

www.mgaylard.co.uk and thanks for looking, CC BY 2.0, Wikimedia Commons. 사진: www.mgaylard.co.uk and thanks for looking

스팟 5 / 5 · 기관실(Engine Rooms), 남쪽 진입로 아래. 남탑 출구에서 블루 라인을 따라가면 나오며, 기념품 가게를 지나 밖으로 나갑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기관실

엘스윅의 W. G. 암스트롱 미첼 사(Sir W. G. Armstrong, Mitchell & Co.)가 존 울프 배리와 함께 설계하고, 해밀턴 렌들과 새뮤얼 홈프리의 감독 아래 설치 · 1887년 12월 계약, 1894년부터 1976년까지 다리를 들어 올림 · 석탄 보일러, 증기 펌프 기관, 각각 약 100톤의 추를 얹은 수압 어큐뮬레이터 6기. 물을 제곱인치당 750파운드의 압력으로 저장

눈여겨볼 점

  • 빨강과 크림색 선을 두른 초록색 플라이휠. 이 색은 윌리엄 암스트롱이 자기 집안 문장에서 직접 골랐습니다.
  • 머리 위의 어큐뮬레이터. 각각 약 100톤의 추로, 도로를 들어 올릴 힘을 모아 두었습니다.
스크립트 (2:27)

남탑을 내려와 보도 위 블루 라인을 따라왔습니다. 그 선에는 이 다리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요리사 해나 그리그스, 14살에 일을 시작한 리벳 심부름꾼 소년 존 초크도 그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남쪽 진입로 아래, 82년 동안 도로를 들어 올린 기계들 사이에 있습니다.

초록색 플라이휠부터 보세요. 빨강과 크림색 선을 두른 이 색은 윌리엄 암스트롱이 자기 집안 문장에서 직접 고른 것입니다. 암스트롱은 사무 변호사로 11년을 보낸 뒤에야 끝내 공학에 끌려 발을 들였고, 1842년 무렵에는 이곳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장치를 발명해 두었습니다. 바로 수압 어큐뮬레이터입니다. 그의 회사, 엘스윅의 W. G. 암스트롱 미첼 사는 1887년 12월 이 기계 설비 계약을 8만 5,232파운드에 맺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북부의 마법사라고 불렀습니다.

그 마법은 이렇게 작동했습니다. 옆방에서 보일러의 석탄 불이 물을 증기로 바꿉니다. 증기가 이 펌프 기관을 돌리고, 피스톤이 플라이휠을 돌리며 펌프를 움직여 물을 어큐뮬레이터 6기로 밀어 넣습니다. 어큐뮬레이터는 추를 얹은 실린더로, 물을 제곱인치당 750파운드의 압력으로 붙잡아 두었습니다. 물로 만든 배터리였던 셈입니다. 다리를 열어야 할 때면 저장한 물을 구동 기관으로 흘려보냈고, 구동 기관이 톱니바퀴를 돌리고, 톱니바퀴가 도개교 뒤쪽의 톱니 막대를 밀어, 도로가 올라갔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며 어큐뮬레이터를 찾아보세요. 추 하나가 약 100톤입니다.

기관 하나에만 기대는 일은 없었습니다. 교각마다 기관이 2쌍씩 있었고, 기계는 상무부 기준의 두 배로 튼튼하게 지었습니다. 그 기준부터가 테이 철교 참사 뒤에 이미 강화된 것이었습니다. 기관은 먹이도 필요했습니다. 화부들은 일주일에 20톤이 넘는 석탄을 삽으로 퍼 넣었고, 기관을 돌리고 다리를 계속 들어 올리려면 80명이 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는 이 아래에 고양이들도 살았습니다.

전쟁은 이 방에도 닥쳤습니다. 1941년 4월, 다리 가까이에서 낙하산 기뢰가 터져 도개교 한쪽과 탑들, 그리고 기관실이 크게 부서졌습니다. 전쟁 중에는 이곳 기관들이 망가질 때를 대비해 세 번째 기관이 설치되었는데, 그 기관은 지금 노퍽의 증기기관 박물관에 있습니다.

1974년부터는 다리를 계속 열면서 기름으로 움직이는 새 전기 유압 시스템을 증기 설비 옆에 들였고, 1976년에 옛 시스템은 연결이 끊겼습니다. 그때까지 이 기관들은 도개교를 40만 번 넘게 들어 올렸습니다. 그 뒤로 줄곧 멈춰 있지만, 여전히 암스트롱의 초록색을 입고 있습니다.

독립 가이드 · Chiaro

타워브리지에서는 무엇에든 Chiaro를 비춰 보세요.

스팟은 다섯 개지만, 이 다리에는 아무도 설명을 붙여 두지 않은 것들이 빼곡합니다. 가로등 받침의 문장, 하류에서 도로가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돛단 바지선, 보행로 창 너머 스카이라인의 첨탑, 보일러에 달린 압력계. 무엇이든 찍으면 Chiaro가 이름을 알려 주고, 누가 거기에 두었는지, 이 다리와 무슨 상관인지 설명한 다음, 강 위로 배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계속 질문에 답합니다.

다리가 지금 어느 배 때문에 열리는 거예요?강 건너 저 건물은 뭐예요?기관은 왜 초록색으로 칠했어요?

방문 전에

01

가는 길

타워브리지는 북쪽 강변의 타워 브리지 어프로치(Tower Bridge Approach)와 남쪽 강변의 타워 브리지 로드(Tower Bridge Road)를 잇는 도로교입니다. 매표소와 입구는 북탑 서쪽, 즉 다리의 북서쪽에 있고, 누구나 그 바깥에서 줄을 섭니다. 관람은 남쪽 진입로 아래 기관실(Engine Rooms)과 기념품 가게에서 끝나며, 남동쪽의 외부 엘리베이터가 그 층과 차도 높이를 이어 줍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타워 힐역(디스트릭트선, 서클선)으로 매표소까지 약 500미터, 걸어서 7분이며 승강장에서 거리까지 계단 없이 나올 수 있습니다. 노던선과 주빌리선이 서는 런던 브리지역은 기관실 쪽 끝에서 약 1킬로미터입니다. 내셔널 레일은 펜처치 스트리트역과 런던 브리지역, DLR은 타워 게이트웨이역이 가장 가깝습니다. 버스는 15, 42, 78, 100, 343번이 다리까지 가고, 리버보트는 북쪽의 타워 부두와 남쪽의 런던 브리지 시티 부두에 섭니다.

02

입장권과 입장 안내

  • 다리는 매일 09:30부터 18:00까지 열고 마지막 입장은 17:00입니다. 단, 매달 둘째 토요일은 다릅니다. 그날 아침 09:30부터 11:30까지는 신경다양성 방문객과 그 가족, 친구, 보호자를 위해 인원을 줄여 운영하는 릴랙스드 오프닝(Relaxed Opening) 시간이고, 일반 관람객은 그 뒤에 입장합니다. 크리스마스 기간인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는 문을 닫고, 새해 첫날은 조금 늦은 10:00에 엽니다.
  • 이 코스에서 표가 필요한 곳은 입장권 한 장으로 모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북탑과 남탑, 유리 바닥(Glass Floors)이 있는 상층 보행로, 그리고 기관실입니다. 성인 18.00파운드, 어린이(5~15세) 9.00파운드이며 5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원하는 입장 시간으로 8주 전부터 예약할 수 있지만, 예약했다고 해서 빨리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줄은 다리 위 바깥에 서고, 다리가 들리면 줄이 멈출 수 있습니다.
  • 입구에서 가방 검색을 하고, 기관실 문 앞에서 표와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합니다. 숄더백과 배낭은 45 x 35 x 20센티미터 안에 들어가야 하고, 여행 가방과 바퀴 달린 가방은 반입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는 카페, 식당, 정수기가 없습니다.
  • 탑마다 보행로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남동쪽 외부 엘리베이터로 기관실에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예고 없이 멈출 수 있다고 운영 측이 안내하고 있습니다.
공식 입장권 →
03

공식 오디오 가이드

타워브리지 공식 오디오 투어는 입장권 외에 따로 돈이 들지 않습니다. 모두 세 가지로, 영어, 아랍어, 중국어(보통화),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듣는 하이라이트 투어(Highlights Tour), 감각에 초점을 맞춘 센서리 투어(Sensory Tour), 그리고 영국 수어 투어가 있습니다. 모두 탑 안의 QR 코드나 무료 앱을 통해 본인 휴대전화로 재생하며, 길이는 45분 안팎입니다. 헤드폰은 나눠 주지 않으니 챙겨 오세요. 녹음 대신 사람의 안내를 원한다면, 정해진 날짜에 영어로 진행하는 가이드 투어(Guided Tours)가 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고 성인 35.00파운드이며, 미리 예약해야 합니다. 이 페이지는 줄 서기 전의 구간과 그 뒤의 구간을 모두 다룹니다. 강변과 공공 보도에서 두 곳, 안에서 세 곳이며, 모든 플레이어 아래에 들리는 말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

자주 묻는 질문

무료 타워브리지 오디오 가이드가 있나요?

있습니다. 그것도 줄 앞과 줄 뒤 양쪽에서 쓸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의 해설 다섯 스팟은 휴대전화 브라우저에서 재생되며, 그중 둘은 매표소 앞의 공공장소에, 셋은 안에 있습니다. 공식 오디오 투어 세 가지도 입장권에 포함되어 무료이고, 본인 휴대전화와 헤드폰으로 듣습니다. 두 가지 모두 다루지 않는 것, 이를테면 풀 오브 런던에 떠 있는 바지선이나 가로등의 문장은 사진 한 장이면 Chiaro 앱이 들려줍니다.

표 없이도 타워브리지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나요?

처음 두 스팟은 들을 수 있습니다. 런던탑 아래 강변 산책로에서 보는 전경과 북쪽 진입로의 위장한 굴뚝은 모두 공공장소에 있습니다. 차도와 보도는 누구나 무료로 건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탑 계단, 서쪽 보행로, 기관실은 유료 관람 구역 안에 있으며, 셋 다 입장권 한 장으로 들어갑니다.

타워브리지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얼마인가요?

입장료 외에는 들지 않습니다. 공식 오디오 투어는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고, 45분 안팎 길이이며, QR 코드나 무료 앱으로 본인 휴대전화에서 재생되니 헤드폰을 챙기세요. 돈을 따로 내는 것은 직원이 이끄는 가이드 투어로, 성인 35.00파운드에 1시간 30분, 영어로만, 정해진 날짜에만 진행됩니다.

타워브리지 관람은 어디서 시작하고, 쉬는 날은 언제인가요?

북탑 서쪽, 다리 북서쪽에 있는 매표소에서 시작합니다. 이 페이지는 그보다 몇 분 앞서 런던탑 아래 강변 산책로에서 출발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박싱 데이까지 성탄절 사흘을 빼면 매일 문을 엽니다. 새해 첫날은 10:00로 늦게 열고, 매달 둘째 토요일에는 09:30부터 11:30까지 릴랙스드 오프닝이 끝난 뒤에 일반 입장이 시작됩니다.

다리가 들리면 못 들어가나요?

늦어질 수는 있습니다. 이곳은 지금도 키 큰 배를 위해 열리는 현역 다리로, 평균 하루 두세 번 열립니다. 도개 때문에 입장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운영 측도 알리고 있으며, 예정된 도개 시간은 공식 사이트의 Bridge Lifts(도개 일정) 페이지에 공개됩니다.

다른 오디오 가이드

Chiaro 제작. 타워브리지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