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카손 시테 · 카르카손 · 독립 가이드
카르카손 오디오 가이드,
다섯 스팟, 무료.
3킬로미터에 걸친 이중 성벽을 따라 늘어선 52개의 탑. 그중 다섯 곳을 여기서 끝까지 들려드립니다. 그 밖의 탑이나 문, 돌에 새긴 얼굴은 사진만 찍으면 Chiaro가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Chiaro 제작. 카르카손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다섯 개의 스팟 · 오디오 12분
다섯 장소, 하나의 동선,
관람 순서대로.
이 셀프 가이드는 언덕 위 성채 도시(시테)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다섯 스팟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의 세 곳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정문 바깥 진입로에서 듣는 나르보네즈 문, 북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두 성벽 사이의 빈터 '리스', 그리고 성의 바비칸(외보)에 닿기 전 마을 안에서 바라보는 성의 해자와 다리, 나무 돌출 회랑입니다. 나머지 두 곳은 기념물 입장권으로 들어갑니다. 성 안의 명예의 안뜰, 그리고 오드강 너머 피레네산맥까지 멀리 내다보이는 서쪽 성벽입니다. 녹음 다섯 개를 합치면 10분 남짓이지만, 운영 측은 성과 성벽 관람 자체에 2시간쯤을 잡아 둡니다.
운영 시간과 요금, 무료 입장일,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범위처럼 방문객이 실제로 움직일 때 기준이 되는 정보는 2026년 10월 1일 remparts-carcassonne.fr에서 확인했습니다. 성과 성벽을 관리하는 프랑스 국가 문화유산 기관,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가 관람 조건을 올려 두는 사이트입니다. 역사는 이 기관의 역사 페이지를 바탕으로 프랑스어판과 영어판 위키백과와 대조했고, 사실마다 출처를 따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곳은 해마다 두 번, 4월 1일과 10월 1일에 운영 시간과 요금을 바꿉니다. 매표소 안내판이 이 페이지와 다르게 말한다면 안내판을 따르시고, 저희에게도 알려 주시면 페이지를 고치겠습니다.
P. Hughes, CC BY 4.0, Wikimedia Commons. 사진: P. Hughes
스팟 1 / 5 · 시테의 동쪽 정문인 나르보네즈 문 바깥, 해자 건너 두 탑을 바라보며 서쪽을 향해. 공공 구역, 무료
나르보네즈 문
1280년 무렵 대담왕 필리프 3세를 위해 건설. 총안 흉벽과 지붕은 1859~1860년 외젠 비올레르뒤크(1814~1879)가 복원 · 1280년 무렵. 1859~1860년 복원 · 거친 면 마감으로 쌓은 사암. 높이 각 30미터의 탑 두 개
눈여겨볼 점
- 각 탑 앞쪽의 뾰족한 돌출부. 어느 탑도 단순한 원통이 아니라 진입로 쪽으로 뾰족하게 끌어낸 모양인데, 날아오는 포탄을 옆으로 흘려보내기 위한 형태입니다.
- 두 탑 사이, 문 위에 있는 세 잎 모양 머리의 벽감과 그 안의 성모상.
- 다리 옆의 흉상과 그 아래 새겨진 CARCAS SVM. 복제품이며, 중세 쐐기돌로 머리를 만든 16세기 원작은 성 안에 있습니다.
스크립트 (2:32)
지금 서 계신 곳은 시테의 동쪽입니다. 서쪽을 바라보면 나르보네즈 문의 두 탑이 보이고, 앞에는 다리와 물 없는 마른 해자가 있습니다. 이곳이 정문인데, 이쪽을 향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동쪽은 언덕 경사가 완만해서 물건을 끌어올리기 쉬웠습니다. 그 말은 군대가 올라오기에도 똑같이 쉬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요새 전체에서 가장 두꺼운 방어가 바로 여기에 놓였습니다.
탑의 모양을 보세요. 그냥 둥글지 않습니다. 탑마다 이쪽을 향해 뾰족한 돌출부가 끌려 나와 있어서, 겨냥해 쏜 포탄이 정면으로 꽂히지 않고 옆으로 미끄러집니다. 탑의 높이는 각각 30미터입니다. 3층에는 두 탑을 잇는 커다란 위병실이 있었고, 탑은 창고 노릇도 했습니다. 한쪽에는 물탱크, 다른 쪽에는 지하 저장고가 있어서, 안에 있는 병사들은 긴 포위전도 스스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나르보네즈 문이라고 불리기 전에는 프레상 문이었고, 그 자체로 독립된 요새로 설계되었습니다. 아치 뒤 통로는 내리닫이 쇠창살문 두 개로 막혔고, 그 위에는 두 창살문 사이에 갇힌 사람을 노리는 살인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이 문이 세워진 것은 1280년 무렵, 필리프 3세와 필리프 4세가 카르카손에 새 성벽을 둘러 주기로 했을 때입니다. 그 메시지는 남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피레네산맥 기슭의 구릉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프랑스가 경계하던 맞수, 아라곤 왕국이 있었습니다.
문 위, 두 탑 사이에는 세 잎 모양 머리를 한 벽감이 있고, 그 안에 성모상이 서 있습니다. 이제 다리 옆 아래쪽을 보세요. 묘하게 웃는 얼굴을 한 여인의 돌 흉상이 있고, 발치에 '카르카스 숨', 곧 '나는 카르카스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복제품이고, 16세기 원작은 성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조각가는 머리에 오래된 중세 쐐기돌을 썼고, 소매의 데이지꽃은 1538년에 이곳을 지나간 프랑수아 1세의 누이, 마르그리트 당굴렘에게 바치는 찬사일지도 모릅니다.
전설에 따르면 카르카스 부인은 샤를마뉴에 맞서 5년 동안 도시를 지켜 냈습니다. 마지막 남은 밀 한 자루로 마지막 돼지를 먹인 뒤 가장 높은 탑에서 던져 버렸더니, 프랑크인들은 이 도시에 먹을 것이 넘쳐난다고 생각하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부인이 모든 종을 울리자 한 병사가 '카르카스 손', 카르카스가 종을 울린다고 외쳤고, 그렇게 도시의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역사는 그보다 담백합니다. 759년에 사라센인에게서 카르카손을 빼앗은 프랑크인을 이끈 것은 단신왕 피핀이었고, 그의 아들 샤를마뉴는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다리에 발을 올리기 전에 고백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건너실 도개교는 19세기에 비올레르뒤크가 덧붙인 것입니다. 1859년과 1860년에 문의 총안 흉벽과 지붕을 다시 지을 때였고, 원래의 문에는 도개교가 없었습니다.
Marmontel, CC BY 2.0, Wikimedia Commons. 사진: Marmontel
스팟 2 / 5 · 두 성벽 사이의 빈터인 리스. 나르보네즈 문으로 들어가 오른쪽(북쪽)으로 꺾으면 아래쪽 리스(리스 바스). 시 관리 구역, 무료
두 성벽 사이, 리스
안쪽 성벽은 3~4세기 갈로로마 시대 기초 위에, 바깥 성벽은 1226년 이후 프랑스 왕들을 위해 건설. 외젠 비올레르뒤크(1814~1879)와 후계자들이 복원했으며, 마지막 집들은 1911년에 철거 · 3세기~1300년 무렵. 1853~1911년 정비와 복원 · 사암. 성벽 높이 10~12미터. 바깥 성벽은 길이 1,600미터에 탑 14개, 안쪽 성벽은 탑 24개
눈여겨볼 점
- 이 북쪽 면에서 안쪽 성벽 아랫부분을 가로지르는 벽돌 층. 이 띠 모양 석축이 갈로로마 시대 성벽으로, 시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입니다.
- 두 고리의 차이. 바깥쪽은 낮고 둥근 탑이며 지붕 없는 것도 여럿 있고, 안쪽은 더 높고 지붕을 얹은 탑입니다. 빼앗긴 바깥 탑이 적에게 은신처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중세 탑 밑동의 벌어진 부분. 꼭대기에서 떨어뜨린 것이 튕겨 나가 아래의 공격자를 맞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스크립트 (2:16)
바깥 문을 지나 안쪽 문에 닿기 전, 지금 계신 곳이 리스입니다. 두 성벽 사이에 길게 난 빈터이지요. 오른쪽, 북쪽으로 꺾어 조금 걸어 보세요. 바깥쪽에 있는 낮은 벽이 바깥 고리이고, 안쪽에 높이 솟아 탑들이 촘촘히 늘어선 벽이 안쪽 고리입니다.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바깥 성벽을 넘은 공격자는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 게 아닙니다. 들어서는 곳은 바로 여기, 몸을 숨길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평평한 땅입니다. 동료들과 갈라지고, 두 방향의 사격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바깥 탑들은 둥글고 낮은 것이 많으며, 상당수가 지붕 없이 남겨졌는데, 그건 일부러 그런 것이었습니다. 탑 하나를 차지한 적이 안쪽 성벽의 공격을 받을 때, 아래로 피할 지붕을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이 북쪽 면은 아래쪽 리스, 리스 바스라고 부릅니다. 안쪽 성벽의 아랫부분을 보세요. 여기서 가장 오래된 석축은 갈로로마 시대 것입니다. 작고 고른 돌 사이로 벽돌 층이 지나가는데, 이것이 벽에 유연함을 주고 땅이 가라앉는 것을 흡수했습니다. 이 첫 성벽은 3세기와 4세기에 걸쳐 쌓였고 길이는 약 1,200미터였습니다. 그 탑들은 바깥쪽은 말굽처럼 둥글고 안쪽은 평평한 모양으로, 높이가 11.65미터에서 13.7미터입니다. 운영 측은 이 면에 있는 마르키에르 탑과 비욀라 탑을 가장 잘 남은 예로 꼽습니다.
바깥 성벽은 1226년 이후, 카르카손이 프랑스 왕실의 것이 된 다음에 생겼습니다. 길이 1,600미터에 탑은 14개로, 안쪽 고리의 24개와 비교됩니다. 벽면은 넓고 거칠게 쌓아서 공성용 사다리가 흔들리게 했습니다. 나중에 지은 탑들의 밑동도 보세요. 바깥으로 불룩하게 벌어져 있습니다. 꼭대기에서 떨어뜨린 것은 이 경사면에 부딪혀 아래 서 있는 사람 쪽으로 튕겨 나갑니다.
이곳은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평화로운 때에는 리스에서 온갖 공공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러다 17세기 이후 시테가 비어 가자 가난한 직조공들이 성벽에 기대어 집을 지었고, 19세기에 당국이 리스 안에서 센 집이 112채였습니다. 대부분은 빈민굴과 다를 바 없었지요. 집들은 복원이 진행되면서 치워졌고, 마지막 집이 헐린 것은 1911년입니다.
이 성벽 어딘가에 트로케라는 커다란 직사각형 돌덩이가 있습니다. 오크어로 '작은 구멍'이라는 뜻입니다. 그 돌은 리스에서 시테 바깥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의 입구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설계된 요새 안에 만들어 둔, 비밀 출구였던 셈입니다.
Marmontel,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일부 잘라냄. 사진: Marmontel
스팟 3 / 5 · 시테 안, 성의 동쪽 바비칸(외보)과 해자를 건너는 다리 앞에서 서쪽을 향해
성의 해자와 다리, 동쪽 문
1130년 무렵 베르나르 아통 4세가 짓기 시작한 트랑카벨 가문의 저택을 1228~1239년 국왕을 위해 요새화. 돌출 회랑은 외젠 비올레르뒤크(1814~1879)가 재현. 성은 1889년부터 폴 뵈스빌발트(1844~1931)와 앙리 노데(1855~1940)의 지휘로 복원 · 1130년 무렵. 1228~1239년 요새화. 1889~1902년 복원 · 사암과 재현된 목조 돌출 회랑. 성과 성 자체의 성벽에 탑 9개
눈여겨볼 점
- 성벽 꼭대기와 오른쪽 탑을 두른 목조 돌출 회랑. 낭떠러지 위로 내걸어 바로 아래로 쏘기 위한 통로로, 비올레르뒤크의 지휘로 재현되었습니다.
- 성의 탑에 씌운 슬레이트 원뿔 지붕. 낮은 로마식 기와지붕의 고장에서 비판받은 북프랑스식 지붕입니다.
- 문 앞에 놓인 두 겹의 장애물. 앞쪽의 바비칸과 다리 밑의 해자인데, 해자는 안쪽 성벽까지 빙 둘러 이어집니다.
스크립트 (2:20)
다시 성벽 안으로 들어오셨다면, 시테 안을 서쪽으로 걸어 성 앞이 탁 트이는 곳까지 가세요. 성의 바비칸, 곧 외보 앞에 서면 정면에 다리와 해자가 있습니다. 지금 마주한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보세요. 요새 안의 요새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1067년 트랑카벨 가문이 카르카손 자작령을 얻었고, 1130년 무렵 이곳에 저택을 지었습니다. 팔라티움이라 불린 궁으로, 서쪽의 옛 로마 성벽 위, 경사가 가장 가파르게 떨어지는 자리에 섰습니다. 어디까지나 살림집이었고, 마을과의 사이에는 목책 정도만 있었습니다. 1209년 카타리파를 치는 십자군이 카르카손에 이르자, 지붕에 총안 흉벽을 덧대 사격 거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뒤 도시가 왕의 손에 넘어가자, 1228년부터 1239년 사이에 저택은 지금 눈앞의 요새로 다시 지어집니다. 목책 대신 돌 성벽, 안쪽 성벽까지 빙 두른 해자, 입구 앞의 바비칸, 그리고 두 탑 사이의 문에는 돌출 총안과 내리닫이 쇠창살문, 육중한 문짝. 다리는 처음엔 고정된 다리였다가, 회전하는 다리가 되었고, 마침내 평형추로 움직이는 도개교가 되었습니다. 이 성벽이 왕의 세네샬, 곧 국왕 대관을 지켜 준 상대는 침입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왕실에 대한 충성이 아직 미덥지 않던 카르카손 주민들로부터도 지켜 주었지요.
이제 성벽 꼭대기와 오른쪽 탑을 두른 나무 회랑을 보세요. 돌출 회랑입니다. 낭떠러지 위로 나무 상자를 내건 것으로, 석궁수가 거기서 성벽 밑동과 리스를 향해 바로 아래로 쏠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썩기 때문에 중세의 돌출 회랑은 어디에도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비올레르뒤크의 지휘로 재현된 것이고, 덕분에 카르카손은 포위전 채비를 갖춘 성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지붕입니다. 비올레르뒤크는 북프랑스의 성들처럼 탑마다 가파른 슬레이트 원뿔 지붕을 씌웠고, 그 때문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로마식 기와를 얹은 낮은 지붕의 고장이었으니까요. 그의 대답은, 이 지방을 정복한 십자군이 북쪽에서 왔으니 자기네 장인을 데려왔을 수 있고, 현장에서 슬레이트 조각도 찾아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시테에는 두 가지 지붕이 다 남아 있고, 성벽 위에서 서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성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879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곳 공사는 1889년에야 그의 제자 폴 뵈스빌발트, 이어서 앙리 노데의 지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19세기 동안 이 건물은 감옥으로 쓰였습니다.
Marmontel,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일부 잘라냄. 사진: Marmontel
스팟 4 / 5 · 콩탈 성(백작의 성), 입구를 들어서면 나오는 첫 번째 안뜰인 명예의 안뜰. 일반 입장권으로 입장
성의 명예의 안뜰
1130년 무렵부터 트랑카벨 가문의 자작들이 조성. 1150년 예배당 추가, 1240년 무렵 한 층 증축. 18세기까지 건물 개축이 이어졌고, 1889년부터 폴 뵈스빌발트(1844~1931)와 앙리 노데(1855~1940)의 지휘로 복원 · 1130년 무렵~18세기 · 직사각형 안뜰을 둘러싼 사암 건물들. 1150년의 예배당을 포함한 ㄷ자형 평면. 1240년 무렵 한 층 증축
눈여겨볼 점
- 한 벽에 두 시대. 긴 건물 아래쪽에는 뾰족한 고딕 창, 그 위에는 네모난 십자 창살 창.
- 네모난 탑의 작은 쌍둥이 창. 가느다란 작은 기둥 하나 위에 둥근 아치 두 개가 얹힌, 트랑카벨 저택의 로마네스크 양식입니다.
- 지붕. 긴 건물에는 로마식 기와, 탑에는 슬레이트. 복원을 두고 맞섰던 두 지붕 전통입니다.
스크립트 (2:20)
이제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곳은 명예의 안뜰, 성 한가운데의 안뜰입니다. 가운데 서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세요. 주위의 벽이 저마다 다른 세기에 속해 있으니까요. 이 직사각형을 두른 건물들은 12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거듭 고쳐 지어졌고, 그 흔적을 벽면 하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긴 건물 아래쪽에는 뾰족한 고딕 창, 그 위에는 네모난 십자 창살 창, 그리고 네모난 탑에는 작은 로마네스크 쌍둥이 창이 있습니다. 아치 두 개가 가느다란 기둥 하나를 나눠 쓰고 있지요.
트랑카벨 가문이 살던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들의 저택은 건물 두 채로 시작했습니다. 1150년에 예배당이 더해지면서 이 안뜰을 감싸는 ㄷ자 평면이 되었고, 1240년 무렵에는 전체에 한 층이 더 올라갔습니다. 트랑카벨 가문은 카르카손을 자기 영지의 중심으로 삼으려 했고, 성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음유시인 트루바두르들로 북적였습니다.
그 세계는 바로 이 건물에서 끝났습니다. 1209년 8월 1일, 십자군이 시테를 포위했습니다. 레몽로제 트랑카벨은 더 큰 군대를 마주한 데다 물은 모자라고 도시는 피란민으로 넘쳐났습니다. 그는 15일,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 주는 조건으로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성의 감옥에 갇혔다가, 11월 10일 그곳에서 이질로 숨졌습니다. 십자군 지도자 시몽 드 몽포르가 지시한 살해였다고 말하는 기록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1226년 이후 성은 왕의 세네샬, 곧 국왕 대관의 것이 되었습니다. 14세기 초에는 벽난로와 고딕 창을 갖춘 큰 홀이 지금의 두 번째 안뜰인 남쪽 안뜰(쿠르 뒤 미디) 자리에 세워졌고, 남동쪽 건물 2층에서는 세네샬이 재판을 열었습니다. 그 두 번째 안뜰에서 솟아오른 것이 팽트 탑, 시테에서 가장 높은 네모난 망루입니다. 같은 안뜰 아래에서는 1926년 초대 학예사가 40제곱미터 크기의 로마 모자이크를 찾아냈습니다. 아마 귀족 저택의 바닥이었을 것입니다.
그 뒤의 세기들은 이곳에 가혹했습니다. 성은 19세기에 감옥이 되었고, 1944년에는 독일군이 탄약과 폭약을 쌓아 두는 데 쓰면서 주민들을 시테에서 내쫓았습니다. 이곳에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1961년입니다.
둘러보시는 길에 고고학 수장고에서 꼭 찾아볼 만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문 앞에서 지나온 카르카스 부인 흉상의 원작입니다. 다른 하나는 프랑크인과 사라센인의 싸움을 그린 12세기 벽화로, 최근에 중세 무훈시 《피에라브라스》의 한 장면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성이 아직 트랑카벨 가문의 저택이던 시절, 이곳을 위해 그려진 그림입니다.
Marmontel,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일부 잘라냄. 사진: Marmontel
스팟 5 / 5 · 성을 나와 서쪽 면 성벽 산책로 위에서, 오드 문 너머 아랫마을이 있는 서쪽을 향해. 일반 입장권으로 입장
서쪽 성벽과 오드강 풍경
3~4세기 갈로로마 시대 성벽을 서고트인과 프랑스 왕들이 재건. 1855년부터 외젠 비올레르뒤크(1814~1879)와 후계자들이 복원 · 3세기~1300년 무렵. 1855년부터 복원 · 갈로로마 시대 기초 위의 사암 안쪽 성벽. 말굽형 탑은 높이 11.65~13.7미터, 너비 4.50~7미터
눈여겨볼 점
- 오드 문까지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성벽. 서쪽 문을 함정으로 만든 굽이굽이 꺾인 통로와 가짜 문입니다.
- 오드강 건너 아랫마을, 바스티드 생루이. 1240년 반란 뒤 루이 9세가 쫓아낸 사람들을 위해 세운 마을입니다.
- 남쪽 지평선의 언덕들. 코르비에르 산지이며, 맑은 날에는 그 뒤로 피레네산맥이 보입니다. 옛 아라곤과의 국경입니다.
스크립트 (2:37)
성을 나서면 동선은 서쪽 성벽 위로 올라갑니다. 운영 측의 성벽 안내가 직접 이끄는 쪽이지요. 서쪽을 향해 흉벽 너머를 바라보세요. 발아래 땅은 가파르게 떨어집니다. 성을 이 성벽에 붙여 지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쪽에서는 비탈이 방어의 절반을 맡아 주었으니까요.
가장 가까운 것부터 보겠습니다. 아래의 성벽은 언덕을 지그재그로 내려가 강을 마주한 서쪽 문, 오드 문으로 향합니다. 이 문은 함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높은 아케이드가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가짜 문을 숨기고, 통로는 층계참을 사이에 두고 굽이굽이 꺾여 올라갑니다. 억지로 밀고 들어온 공격자는 우리에서 우리로 차례차례 붙잡힌 채 사방에서 화살을 맞았습니다. 문의 아치 자체는 서고트 시대 것으로, 둥글고 벽돌 띠가 둘려 있습니다. 그 위로 육중하게 튀어나온 부분은 비올레르뒤크의 작품인데, 역사가들은 이를 그의 실수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이 문은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습니다. 《레 비지퇴르》, 《로빈 후드》, 그리고 《르 코르니오》입니다.
이 면을 따라 선 탑들은 오래된 것들입니다. 말굽 모양을 찾아보세요. 바깥쪽은 둥글고 마을 쪽은 평평합니다. 로마 시대의 설계를 서고트인이, 그리고 다시 프랑스 왕들이 고쳐 지었습니다. 성벽 공사는 1855년 바로 이쪽, 안쪽 성벽의 서남서 구간에서 시작되었고, 이 서쪽 순환로를 관람객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하는 공사는 201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오드강 건너로 눈을 들어 보세요. 강 건너편 마을은 바스티드 생루이, 곧 아랫마을인데, 실패한 반란 덕분에 생긴 마을입니다. 1240년 레몽 트랑카벨은 성벽 밖 변두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도시를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가 실패하자 루이 9세는 배신자들의 집을 헐어 버리고, 집주인들을 강 건너로 보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했습니다. 강 양쪽에 하나씩, 두 개의 마을이 단 하나의 벌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다음엔 왼쪽, 남쪽 지평선을 보세요. 언덕들은 코르비에르 산지이고, 맑은 날에는 그 뒤로 피레네산맥이 서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방향이었습니다. 그 너머에 아라곤이 있었고, 오늘 걸어온 모든 것이 그쪽을 바라보도록 지어졌습니다.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국경이 남쪽으로 옮겨 가자 요새는 존재 이유를 잃었고, 1804년 나폴레옹은 이곳을 요새 목록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1849년에는 정부가 성벽을 허물기로 했습니다. 지역 사람들은 장피에르 크로메르비에유와 프로스페르 메리메를 앞세워 이 결정에 맞섰고, 결국 결정은 뒤집혔습니다. 복원은 1853년부터 1911년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지켜 낸 것이 3킬로미터의 이중 성벽 위 52개의 탑입니다. 1997년부터는 세계유산입니다.
독립 가이드 · Chiaro
카르카손에서는 무엇에든 Chiaro를 비춰 보세요.
탑은 52개인데, 이 동선이 멈춰 서는 곳은 그중 몇 개뿐입니다. 화살 구멍, 로마 시대 벽돌 띠, 고고학 수장고의 조각 머리, 강 건너 종탑에 카메라를 대면 Chiaro가 그게 무엇인지, 로마인부터 비올레르뒤크까지 시테를 쌓은 이들 가운데 누가 그 자리에 두었는지 알려 주고, 성벽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꼬리를 무는 질문에도 계속 답해 줍니다.
방문 전에
가는 길
Château et remparts de la Cité de Carcassonne, 1 rue Viollet-le-Duc, 11000 Carcassonne. 시테는 카르카손 시내 남동쪽, 오드강 오른쪽 기슭의 언덕 위에 있습니다. 동쪽 정문인 나르보네즈 문으로 들어가 거리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걸어가세요. 성은 성벽 안쪽, 반대편 서쪽 끝에 서 있습니다.
기차로는 카르카손역까지 갑니다. 아랫마을에서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 퐁비외(옛 다리)가 시테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드강을 건넙니다. 중세에는 시테로 건너가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자동차로는 운영 측 안내대로 A61 고속도로를 타고, 페르피냥이나 몽펠리에 방면에서는 24번 출구, 툴루즈 방면에서는 23번 출구로 나와 N113 도로를 따라 시내 쪽으로 갑니다.
입장권과 입장 안내
- 시테의 거리와 두 성벽 사이의 리스는 시의 소유라 돈을 받지 않으며, 스팟 1~3은 바로 여기서 재생됩니다. 입장권 한 장으로 성벽 산책로와 고고학 수장고가 딸린 성, 그리고 성벽 위 파노라마 산책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매표소 가격은 4월~9월 19유로, 10월~3월 13유로입니다. 18세 미만은 무료이고, 18~25세는 EU 국적자이거나 프랑스에 정식으로 거주하는 EU 밖 국적자라면 증빙을 보이면 무료입니다. 입장 인원에 제한이 있어 운영 측은 예약을 강하게 권합니다.
- 하절기인 4월~9월에는 오전 10시~오후 6시 30분에 열고, 오후 5시 45분 이후에는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동절기인 10월~3월에는 오전 9시 30분~오후 5시이고, 마지막 입장은 오후 4시 15분입니다.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은 휴관입니다. 2시간 정도는 잡으시고, 그날 마지막 시간대는 예약하지 마세요.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면 방과 성벽 구간이 하나씩 닫히기 때문에, 마지막 시간대로는 성과 성벽을 다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환불도 되지 않습니다.
- 유럽 문화유산의 날(9월 셋째 주말)과 1월·2월·3월의 첫째 일요일에는 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여행 가방은 들고 들어갈 수 없지만 유모차 보관 공간은 있습니다. 성 안에서 사진 촬영은 플래시만 쓰지 않으면 됩니다.
공식 오디오 가이드
이곳의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매표소에서 추가 요금을 내고 빌리는 헤드셋입니다.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6개 언어에 6~10세 어린이용 코스도 있습니다. 빌리는 동안 신분증을 맡겨야 하고, 매표소는 오후 4시에 대여를 마감합니다. 운영 측은 가이드 투어도 진행합니다. 성의 방어 시설과 성벽을 둘러보는 1시간짜리 탐방 투어와 90분짜리 해설 투어가 있고, 어느 쪽이든 끝난 뒤에는 일반 동선을 혼자 이어 가게 됩니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가이드는 무료이고 신분증도 필요 없습니다. 다섯 이야기 가운데 세 개는 누구도 입장권을 확인하기 전, 무료인 거리와 리스에서 재생됩니다.
공식 사이트 →자주 묻는 질문
무료 카르카손 오디오 가이드가 있나요?
있습니다. 바로 이 페이지입니다. 다섯 스팟은 어떤 휴대폰 브라우저에서든 무료로 재생되고, 플레이어 아래에 원고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앞의 세 곳은 아무것도 사기 전, 무료인 거리와 리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의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헤드셋 대여이고 따로 돈을 내야 합니다. 이 다섯 스팟이 다루지 않는 탑이나 문, 조각은 Chiaro 앱으로 사진을 찍으면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입장권 없이도 카르카손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나요?
다섯 중 세 개는 들을 수 있습니다. 성벽 가운데 시가 관리하는 구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르보네즈 문, 리스, 성의 해자와 문이 보이는 자리는 모두 시테 안에서 시가 관리하는 무료 구역입니다. 명예의 안뜰과 서쪽 성벽은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의 관람 구역 안에 있고, 입장권 한 장으로 둘 다 들어갑니다.
카르카손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얼마인가요?
매표소에서 입장권과 별도로 추가 요금을 내고 빌리며, 돌려줄 때까지 신분증을 매표소에 맡겨 둡니다. 카탈루냐어를 포함한 6개 언어에 6~10세 어린이용 코스가 있고, 오후 4시가 지나면 더 이상 빌려주지 않습니다.
카르카손 시테 안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나요?
성벽 안쪽 거리와 두 성벽 사이의 리스는 시의 소유라 무료입니다. 돈을 내는 곳은 콩탈 성(백작의 성)과 성벽 산책로로, 하절기 19유로, 동절기 13유로이며 18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어디서 시작하면 좋고, 성은 언제 문을 닫나요?
동쪽 정문인 나르보네즈 문 바깥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걸어가세요. 성과 성벽은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에 문을 닫습니다. 그 밖의 날은 매일 열며, 4월부터는 하절기 시간, 10월부터는 동절기 시간이 적용됩니다.
다른 오디오 가이드
Chiaro 제작. 카르카손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