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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성 · 윈저 · 독립 가이드

윈저성 오디오 가이드,
다섯 스팟, 무료.

지금도 사람이 사는 성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성입니다. 1070년경 템스강 위 백악 절벽에서 짓기 시작했고, 그 뒤로 마흔 명의 군주가 이곳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다섯 곳은 여기서 바로 재생되고, 나머지는 Chiaro 카메라를 비추고 물어보세요.

Chiaro 제작. 윈저성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9:41

캐슬 힐에서 보는 헨리 8세 문

윈저성, 윈저

0:00 2:31
스팟 1 / 5

다섯 개의 스팟 · 오디오 12분

다섯 장소, 하나의 동선,
관람 순서대로.

이 윈저성 오디오 가이드는 성벽 바깥의 캐슬 힐에서 시작합니다. 거기서부터 다섯 스팟은 성이 정해 둔 일방통행 동선을 그대로 따라, 스테이트 아파트먼트(국빈용 공간)까지 올라갔다가 예배당 앞을 지나 내려옵니다.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니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스팟은 입장 센터(Admission Centre)에 닿기 전, 헨리 8세 문 아래에서 재생하세요. 두 번째는 중간 구역(Middle Ward)의 라운드 타워 둔덕 아래로, 바로 옆에 노르만 문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스테이트 아파트먼트 안 스테이트 엔트런스에서 롱 워크를 남쪽으로 내려다보며, 네 번째는 위층의 워털루 체임버에서, 마지막은 하부 구역(Lower Ward)의 성 조지 예배당 앞, 출구 조금 위에서 듣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들으면 약 10분입니다. 걷는 길은 처음에는 대부분 오르막이며, Royal Collection Trust는 입장 센터에서 스테이트 아파트먼트까지 10분, 관람 전체에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잡으라고 안내합니다.

이 페이지의 개방일, 요금, 동선은 2026년 9월 27일에 Royal Collection Trust의 공식 사이트 rct.uk와 방문자 지도에서 옮겨 왔습니다. 역사 서술은 별도의 자료 하나와 다시 맞춰 보았고, 각 주장 옆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문장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윈저는 지금도 쓰이는 왕궁이라, 국가 행사가 잡히면 방 전체가, 때로는 성 전체가 거의 예고 없이 관람 동선에서 빠집니다. 그날 현장 직원의 안내가 저희와 다르다면 직원 말이 맞습니다. 저희에게 한 줄 남겨 주시면 이 페이지를 바로잡겠습니다.

스팟 1 / 5 · 성벽 바깥의 공공 도로인 캐슬 힐, 하부 구역 맨 아래에 있는 헨리 8세 문 밑. 방문객이 들어가는 입장 센터(Admission Centre)는 캐슬 힐을 더 올라간 곳에 있고, Royal Collection Trust의 지도에는 이 문 옆이 방문객 출구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캐슬 힐에서 보는 헨리 8세 문

헨리 3세의 문루가 있던 자리에 1511년경 헨리 8세를 위해 다시 지음. 양옆으로 이어지는 하부 구역의 성벽과 탑은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앤서니 샐빈(1799–1881)과 에드워드 블로어(1787–1879)가 새로 쌓음 · 하부 구역의 석조 성벽과 문루 1224–1230년, 지금의 문 1511년경, 하부 구역 탑들의 빅토리아 시대 재건 · 하부 구역 성벽에 난 석조 문루로, 양옆에 팔각형 탑 두 개가 붙어 있음. 그 뒤의 성 부지는 13에이커(5.3헥타르)이며, 템스강에서 100피트(30미터) 솟은 백악 절벽 위에 있음

눈여겨볼 점

  • 아치 위의 돌 조각판. 헨리 8세의 문장이 있고, 그 옆에 그의 첫 왕비 캐서린 오브 아라곤의 상징인 그라나다 석류가 있습니다.
  • 문 양쪽에 선 팔각형 탑 두 개. 1511년경 헨리를 위해 다시 지은 것으로, 헨리 3세가 1224년부터 1230년까지 쌓은 석조 성벽의 선 위에 있습니다.
  • 오른쪽 성벽 너머, 성 한가운데 둔덕 위에 선 라운드 타워의 꼭대기. 다음 스팟입니다.
스크립트 (2:31)

언덕 맨 아래에 있는 문루를 올려다보세요. 굵은 팔각형 탑 두 개, 그 사이에 뾰족한 아치가 있습니다. 여기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입장 센터는 캐슬 힐을 더 올라간 곳에 있고, 이 문은 성 조지 예배당을 지나 관람이 끝날 때 나오는 출구입니다. 그러니 아직 성벽 바깥에 있는 지금, 제대로 한번 봐 두세요.

아치 위, 벽 한가운데에 돌 조각판이 있습니다. 헨리 8세의 문장입니다. 헨리는 즉위한 지 겨우 2년쯤 된 1511년경에 이 문을 다시 지었는데, 조각판에는 그의 문장 옆에 두 번째 상징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라나다의 석류, 첫 왕비 캐서린 오브 아라곤의 표장입니다. 1522년 6월, 헨리는 캐서린의 조카인 카를 5세 황제를 이곳에 맞아 사냥과 연회로 대접했고, 윈저 조약을 안겨 돌려보냈습니다. 프랑스를 함께 치자는 약속, 그리고 카를이 헨리의 딸 메리와 결혼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조약은 1525년에 깨졌습니다. 석류는 아직도 저기 있습니다.

이 문은 훨씬 오래된 선 위에 서 있습니다. 헨리 3세는 1224년부터 1230년까지 성의 이 낮은 부분 성벽을 돌로 다시 쌓았고, 바로 이 자리에 문루를 두었으며, 성벽을 따라 새 탑 세 개를 세웠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216년, 반란 귀족들과 프랑스군이 느베르 백작의 지휘 아래 성을 포위했고, 존 왕의 성주 앙젤라르 드 시고녜가 성을 지켜 냈습니다. 그보다 2년 전에도 성은 이미 한 차례 포위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그보다도 더 오래되었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은 색슨족 사냥터의 가장자리, 템스강에서 100피트 높이의 이 백악 절벽을 골라 1070년경 성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을 둥글게 둘러싼 성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모두 시티에서도, 옆 성에서도 하루 행군 거리, 20마일쯤 떨어져 있었고, 이 성은 서쪽 길목을 지켰습니다.

이제 뜻밖의 이야기입니다. 이 성벽을 따라 보이는 것 가운데 상당 부분은 보이는 것보다 젊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건축가 앤서니 샐빈과 에드워드 블로어가 가터 탑, 커퓨 탑, 솔즈베리 탑, 그리고 성벽 안쪽의 밀리터리 나이츠, 곧 군인 기사단의 숙소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러니 이 중세다운 스카이라인의 많은 부분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해석한 중세입니다.

오른쪽 성벽 너머로 성 한가운데 둔덕 위에 선 라운드 타워의 꼭대기가 보입니다. 다음에 갈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군주들은 12세기 초 헨리 1세 때부터 윈저를 써 왔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도록 쓰여 온 궁전이고,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는 이곳을 집으로 삼은 군주를 마흔 명으로 셉니다.

스팟 2 / 5 · 중간 구역(Middle Ward). 세인트 조지스 게이트에서 모트 로드를 따라 노스 테라스로 가는 관람 동선 위, 라운드 타워 둔덕 아래. 노르만 문은 상부 구역(Upper Ward)으로 가는 길에 탑 바로 옆에 서 있습니다

라운드 타워와 노르만 문

둔덕은 정복왕 윌리엄을 위해 쌓았고, 석조 아성은 헨리 2세 때 지었으며, 조지 4세를 위해 제프리 와이엇빌(1766–1840)이 높임. 노르만 문은 에드워드 3세를 위해 지었고, 바깥 모습은 와이엇빌이 고침 · 둔덕 1070년경부터, 아성의 석조 재건 1170년경, 증축 1828–1840년, 노르만 문 14세기 · 높이 50피트(15미터)의 백악 둔덕 위에 선 석조 아성으로, 19세기 초에 30피트(9.1미터)를 위로 더 올림. 노르만 문은 내리닫이 쇠창살문과 살인 구멍을 갖춘 볼트 천장의 문루

눈여겨볼 점

  • 탑 몸통을 한 바퀴 두른 돌 띠. 원래 높이를 표시하는 선으로, 그 위는 모두 조지 4세가 올린 부분입니다. 9미터가량을 오로지 보기 좋으라고 더했습니다.
  • 납작한 쪽 면. 이 탑은 둥글지 않고 D자 모양입니다. 공성전에서 부서진 뒤 헨리 3세 때 남쪽 면을 그렇게 다시 지었기 때문입니다.
  • 둔덕 자체. 둘레의 도랑에서 파낸 백악 15미터 분량으로 쌓았고, 1988년에 새로운 침하가 발견되어 기초를 보강했습니다.
  • 탑 옆의 노르만 문. 아치 양쪽에 둥근 탑이 서 있습니다. 에드워드 3세를 위한 14세기 건축으로, 내리닫이 쇠창살문과 살인 구멍을 갖추고 지었습니다.
스크립트 (2:28)

이제 성 안입니다. 지금 걷는 길은 둔덕 발치를 휘감아 도는 길이고, 그 위의 탑은 이 성에서 가장 오래된 발상입니다. 먼저 생긴 것은 둔덕이었습니다. 둘레의 도랑에서 파낸 백악 15미터 분량을 쌓아 올린 것이고, 정복왕 윌리엄의 일꾼들은 그 꼭대기에 나무로 된 아성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둔덕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12세기 초에 둔덕의 남쪽 면이 2미터 넘게 주저앉은 것입니다. 받치려고 나무 말뚝을 박았고, 나무 아성은 돌로 바뀌었습니다. 헨리 2세가 이를 다시 지었고,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는 지금 보고 계신 라운드 타워를 1170년의 것으로 봅니다. 땅은 지금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1988년에는 탑을 위협할 만큼의 새로운 침하가 발견되어 둔덕 기초를 보강해야 했습니다.

이제 모양을 보세요. 이름이 틀렸거든요. 라운드 타워, 곧 '둥근 탑'은 둥글지 않습니다. 13세기 초 공성전에서 남쪽 면이 크게 부서졌고, 헨리 3세 때 D자 모양으로 고쳐 지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더 튼튼했습니다.

다음으로 선 하나를 찾아보세요. 탑 몸통을 한 바퀴 두른 돌 띠가 있는데, 원래 탑이 거기서 끝났다는 표시입니다. 그 위는 전부 조지 4세의 것입니다. 그의 건축가 제프리 와이엇빌이 성의 높이와 윤곽을 더 당당하게 보이게 하려고 탑을 30피트, 약 9미터 높였습니다.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는 순전히 멋있어 보이려고 한 공사였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효과는 있었지만 모두가 용서한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자 팀 태턴브라운은 새로 생긴 높이를 중세 탑의 '훼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올린 부분은 150년 동안 속이 비어 있었습니다.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야 그 빈 공간에 방을 만들어, 왕실 기록 보관소에 자리를 더 내주었습니다.

탑의 중간 시기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1354년, 에드워드 3세를 위해 추로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로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이 탑에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바로 옆에서 새 궁전을 짓는 동안 이 탑 위의 임시 거처에서 살았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상부 구역으로 가는 길에 탑 옆에 있는 노르만 문을 찾아보세요. 둥근 탑 두 개와 그 사이의 아치입니다. 이 이름 역시 잘못 붙은 것입니다. 이것은 에드워드 3세의 14세기 건축으로, 궁전 재건 사업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지키기 위해 지은 문입니다. 내려서 문을 막을 수 있는 쇠창살문, 그리고 머리 위의 살인 구멍. 그 구멍으로 경비병들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끓는 물이나 뜨거운 모래를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1558년부터 이곳은 성주 겸 총독의 거처입니다. 군주가 자리를 비웠을 때 군주를 대신하는 직책입니다.

스팟 3 / 5 · 상부 구역(Upper Ward), 스테이트 아파트먼트의 지상층. 노스 테라스 쪽 입구에서 이너 홀을 지나 내려가면 쿼드랭글 쪽 스테이트 엔트런스에 닿습니다. 남쪽을 보고 서세요

스테이트 엔트런스와 롱 워크 전망

조지 4세를 위해 제프리 와이엇빌(1766–1840)이 현관 홀을 스테이트 엔트런스까지 늘렸고, 1866년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앤서니 샐빈(1799–1881)이 막았으며, Royal Collection Trust가 다시 열었음. 롱 워크는 찰스 2세를 위해 조성 · 이너 홀과 스테이트 엔트런스 1820년대, 1866년 폐쇄, 2020년 재개방. 롱 워크 1680년대부터 식재, 1945년 이후 다시 심음 · 쿼드랭글(안뜰)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조지 4세 게이트웨이를 지나 롱 워크를 따라 내려다보는 전망. 길이 2.65마일(4.26킬로미터), 너비 240피트(73미터)의 이중 가로수길

눈여겨볼 점

  • 정면, 쿼드랭글 너머 남쪽으로 뻗은 롱 워크. 양쪽에 두 줄씩 나무가 늘어선 길이 성에서 스노 힐까지 2.65마일 이어집니다. 찰스 2세를 위해 만든 길입니다.
  • 같은 선 위, 건너편 건물에 난 문. 조지 4세의 이름을 딴 문으로, 1824년 8월 12일 그가 이곳에서 자신의 개축 공사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 머리 위, 이너 홀 천장에 있는 프랜시스 베르나스코니의 석고 장식(보스). 2020년에 홀을 다시 열 때 여러 겹의 페인트 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스크립트 (2:27)

노스 테라스에서 들어와 이너 홀을 지나 스테이트 엔트런스에 왔습니다. 동선이 여러분을 여기로 데려온 이유는 바로 정면에 있습니다. 남쪽을 보세요. 쿼드랭글, 곧 안뜰을 건너, 건너편 건물의 문을 지나, 계속 더 멀리. 저 멀리까지 뻗어 가는 나무의 줄, 그것이 롱 워크입니다.

길이 2.65마일, 너비 240피트. 성에서 스노 힐까지 이어지는 이중 가로수길입니다. 왕정복고 뒤에 찰스 2세가 길을 냈고, 1680년대 오라녜 공 윌리엄 시대에 느릅나무 두 줄씩으로 식재가 끝났습니다. 느릅나무는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버텼지만, 느릅나무 시들음병 때문에 1945년 이후 대대적으로 다시 심었고, 이번에는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를 번갈아 심었습니다. 맨 끝 스노 힐에는 '코퍼 호스', 곧 구리 말이라고 불리는 조지 3세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1829년에 세워졌고, 받침대는 제프리 와이엇빌이 설계했습니다. 문을 지난 뒤로 여러분이 본 거의 모든 것을 만든 건축가입니다. 스노 힐은 헨리 8세가 앤 불린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린 곳이라고도 전해집니다.

이 문은 각국 국가원수와 군주의 공식 손님이 쓰는 입구이고, 방문객이 이리로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입니다. 조지 4세와 와이엇빌은 노스 테라스에서 이 문까지 건물의 깊이 전체를 관통하는 현관 홀을 원했습니다. 지상층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 자리를 만들려고 조지 3세의 대계단까지 헐었습니다. 조지 4세는 1824년 8월 12일, 개축 공사 전체의 초석을 직접 놓았습니다. 그 자리가 뒷날 조지 4세 게이트웨이가 된 곳, 쿼드랭글 건너편, 지금 보고 계신 시선의 선 위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홀을 거의 30년 동안 썼습니다. 그러다 1866년 건축가 앤서니 샐빈에게 홀을 막고 동서로 난 더 작은 현관 홀을 새로 짓게 했고, 뒤에 있는 이너 홀은 창고가 되었습니다. 홀은 계속 닫혀 있었고, 1965년부터는 일부가 전시 공간으로 쓰이다가, 2020년 개방 공사가 끝나면서 비로소 조지 4세가 뜻했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다음으로 가기 전에 돌아서서 위를 올려다보세요. 복원 팀이 이너 홀 천장에서 여러 겹의 페인트를 벗겨 냈을 때, 프랜시스 베르나스코니가 빚은 장식이 드러났습니다. 섭정 시대에 가장 인기 있던 석고 장인입니다. 주변의 벽은 그 무엇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성의 이 부분은 14세기 중엽 에드워드 3세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같은 층에 있는 그의 그레이트 언더크로프트, 곧 큰 반지하 홀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길이 59미터, 기둥 사이 칸이 13개입니다.

스팟 4 / 5 · 스테이트 아파트먼트 2층. 그랜드 스테어케이스(대계단)를 오른 뒤 그랜드 베스티뷸과 워털루 체임버로 이어지는 동선 위

워털루 체임버

조지 4세를 위해 제프리 와이엇빌(1766–1840)이 설계. 연합국 지도자들의 초상화는 토머스 로런스 경(1769–1830)이 그렸고, 뒤에 데이비드 윌키 경 등의 작품이 더해짐 · 방 1830–1831년, 로런스의 초상화 1814년부터 1820년대까지 · 천창으로 빛이 드는 홀로, 조각한 판벽과 초상화가 벽을 채움. 가장 큰 작품인 로런스의 웰링턴 공작 전신상은 317.1 × 225.65 cm

눈여겨볼 점

  • 나폴레옹을 무찌른 연합국 지도자들을 그린 토머스 로런스 경의 초상화들. 조지 4세가 이 그림들을 위해 지은 방에 지금도 함께 걸려 있습니다.
  • 가장 큰 캔버스 속 웰링턴 공작. 317.1 × 225.65센티미터입니다.
  • 초상화 아래의 조각한 판벽, 그리고 위에서 방을 밝히는 기다란 천창.
스크립트 (2:27)

그랜드 스테어케이스를 올라 그랜드 베스티뷸을 지나면 방이 확 트입니다. 길고, 높고, 빛은 위에서 내려오고, 벽은 얼굴로 가득합니다. 이곳이 워털루 체임버입니다. 1830년과 1831년에, 단 한 가지, 나폴레옹의 패배를 기념하려고 지은 방입니다.

조지 4세는 방보다 초상화 연작을 먼저 구상했습니다. 나폴레옹을 꺾으려고 손잡았던 주요 인물을 빠짐없이 그려 달라고 토머스 로런스 경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면서 계획 전체가 멈췄습니다. 1818년 9월에야 로런스는 마침내 대륙으로 떠났습니다. 먼저 아헨, 다음은 빈, 그리고 1819년 5월에는 로마로 가서 교황 비오 7세와 콘살비 추기경을 그렸습니다. 벽을 따라 보면 그 여정이 그대로 펼쳐집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슈바르첸베르크 공, 교황,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 그리고 누구보다 크게, 웰링턴 공작. 높이가 3미터를 넘는 캔버스입니다. 로런스는 이 그림들이 여기 걸리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830년 1월 7일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제프리 와이엇빌이 초상화들을 둘러싸도록 방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방은 더 기이한 밤도 겪었습니다. 1940년, 로런스의 그림들은 공습을 피해 액자에서 떼어졌고, 그 자리에는 피란 온 10대 미술 학도 클로드 와텀이 벽지에 그린 팬터마임 그림이 걸렸습니다.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거릿 공주가 전시의 팬터마임 공연에 쓸 배경을 원했던 것입니다. 1943년 공연 <알라딘>의 객석에는 영국 해군에서 휴가를 나온, 훗날의 필립 왕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굳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고 친구들은 나중에 말했습니다. 2004년에는 영불 협상 100주년을 기념해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맞은 국가 행사에서 <레 미제라블>을 공연하느라 초상화가 다시 내려졌습니다. 언론은 그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았고, 그 하룻밤 동안 방 이름은 '음악실'로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실제로 쓰이는 방입니다. 주요 관람 동선에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시민이 훈장과 포상을 받는 서훈식이 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가면 동선은 성에서 불탔던 구역을 지납니다. 1992년 11월 20일, 빅토리아 여왕의 개인 예배당에서 고장 난 스포트라이트가 커튼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은 성 조지 홀로 번져 15시간 동안 탔고, 방 115개를 태웠습니다. 그중 9개가 국빈용 방이었습니다. 잃은 미술품은 단 두 점, 자단나무 찬장 하나와, 제때 내리지 못한 윌리엄 비치 경의 아주 큰 그림 한 점입니다. 곧 지나갈 랜턴 로비는 그 예배당이 있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스팟 5 / 5 · 하부 구역(Lower Ward) 북쪽. 상부 구역에서 내려오는 동선 위, 예배당 남쪽 면 앞의 잔디밭과 길에서 바라봅니다. 출구는 하부 구역 맨 아래, 헨리 8세 문 옆입니다

하부 구역에서 보는 성 조지 예배당

에드워드 4세를 위해 솔즈베리 주교 리처드 비첨과 석공 장인 헨리 재닌스가 공사를 이끌어 시작함. 헨리 7세를 위해 레지널드 브레이 경 아래에서 계속되었고, 헨리 8세 때 완공. 1920–1930년 해럴드 브랙스피어 경 아래에서 복원되며 '왕의 짐승들'을 새로 조각함 · 1475–1528년, 신랑 볼트 1503–1506년, 첨탑 위 '왕의 짐승들' 1925년 · 수직 양식 고딕의 석조 예배당으로, 첨탑 위에 문장 속 짐승 76마리를 얹음. 동쪽 끝에는 헨리 3세의 성모 예배당(길이 70피트, 21미터)이 있으며 지금은 앨버트 기념 예배당

눈여겨볼 점

  • 첨탑 위의 '왕의 짐승들'. 열네 종류, 모두 76마리입니다. 크리스토퍼 렌이 1682년에 떼어 내게 한 원래 조각을 대신해 1925년에 새로 깎았습니다.
  • 버팀벽 사이에 칸마다 이어지는 커다란 창들. 남쪽 면을 따라 줄지어 있습니다. 예배당은 1475년부터 1528년까지 지었습니다.
  • 오른쪽 동쪽 끝, 헨리 3세의 성모 예배당. 1863년부터 1873년 사이에 앨버트 기념 예배당으로 바뀌었습니다.
  • 왼쪽, 하부 구역 서쪽 끝에 있는 벽돌과 목조의 휘어진 호스슈 클로이스터(말굽 회랑). 1480년에 예배당 성직자들을 위해 지었습니다.
스크립트 (2:26)

예배당 남쪽 면 앞의 길에 서서, 먼저 지붕선을 따라 눈을 옮겨 보세요. 첨탑마다 동물이 올라앉아 있습니다. 사자, 붉은 용, 표범, 유니콘, 매, 그리고 예일이라는 문장 속 짐승. 모두 76마리, 문장에 쓰이는 동물 열네 가지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젊은 조각들입니다. 원래 조각은 무른 라이게이트석으로 깎은 것이었는데, 1682년 크리스토퍼 렌이 떼어 내자고 권했습니다. 그 뒤로 첨탑은 족히 200년 넘게 빈 채로 있다가, 1920년 해럴드 브랙스피어 경의 지휘로 10년에 걸친 복원이 시작되어 1925년에 새 조각들이 올라갔습니다. 조각가 중 한 명은 영국과 콩고의 피를 함께 이은 마호메트 토머스 필립스로, 1923년에 매와 유니콘을 만들었습니다.

그 아래 건물은 진짜입니다. 에드워드 4세가 1475년에 공사를 시작하면서 자리를 내려고 오래된 건물들을 헐었습니다. 새 왕조가 오래 머물 것임을 보여 주려는 뜻도 있었고, 어쩌면 헨리 6세가 강 건너 이튼에 짓게 한 예배당을 넘어서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공사를 이끈 사람은 솔즈베리 주교 리처드 비첨과 헨리 재닌스라는 석공 장인이었습니다. 공사는 헨리 7세 때도 이어져 신랑 위의 돌 볼트가 1503년부터 1506년 사이에 올라갔고, 헨리 8세 치세인 1528년에 끝났습니다. 버팀벽 사이에 칸마다 이어지는 커다란 창들은 수직 양식 고딕이 한껏 기량을 펼친 모습입니다.

이곳은 에드워드 3세가 1348년에 만든 가터 기사단의 예배당이고, 성가대석에서는 약 800개의 에나멜 입힌 황동판이 6세기에 걸친 단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실 묘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군주 열한 명이 잠들어 있고, 그중에는 헨리 8세, 찰스 1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있습니다. 찰스 1세의 시신은 1649년 1월 처형된 뒤 눈보라 속에 윈저로 옮겨져, 아무 의식 없이 지하 묘실에 안치되었습니다. 헨리 8세는 계획했던 무덤을 끝내 갖지 못했습니다. 무덤의 청동은 내전 때 뜯겨 팔렸고, 대리석 석관은 세인트 폴 대성당에 있는 넬슨 제독 기념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오른쪽, 동쪽 끝을 보세요. 저것이 헨리 3세의 성모 예배당이고, 1863년부터 1873년 사이에 앨버트 기념 예배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제단 뒤에는 이 성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제프리 와이엇빌은 16년 동안 윈저를 새로 빚은 뒤, 1840년 2월 이곳에 묻혔습니다.

준비가 되면, 출구는 하부 구역 맨 아래, 캐슬 힐에서 올려다본 그 헨리 8세 문 옆입니다. 캐서린 오브 아라곤의 석류 아래를 지나 성을 나서게 됩니다.

독립 가이드 · Chiaro

윈저성에서는 무엇에든 Chiaro를 비춰 보세요.

다섯 스팟으로는 천 년 된 성의 대부분이 설명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그랜드 베스티뷸의 갑옷 한 벌, 안토니오 베리오가 그린 천장화, 반 다이크의 그림 한 점, 메리 왕비의 인형의 집 속 방 하나. Chiaro로 사진을 찍으면 누가 만들었고 누가 돈을 댔으며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들을 수 있고, 노스 테라스부터 출구 문까지 이어지는 질문도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라운드 타워는 왜 둥글지 않나요?벽에 걸린 이 남자들은 다 누구예요?예배당 지붕 위 동물들은 뭔가요?

방문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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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Windsor Castle, High Street, Windsor, Berkshire SL4 1NJ. 방문객은 캐슬 힐의 입장 센터(Admission Centre)로 들어가며, 여기서 공항식 보안 검색을 거칩니다. 나올 때는 하부 구역 맨 아래 헨리 8세 문 옆으로 나옵니다. 성에는 방문객 주차장이 없으며, Royal Collection Trust는 차로 오는 사람에게 시내 중심의 공영 주차장을 안내합니다.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의 슬라우발 지선 종착역인 윈저 앤 이튼 센트럴역(Windsor & Eton Central)은 템스 스트리트에 있으며 캐슬 힐 거의 맞은편입니다. 400미터 떨어진 윈저 앤 이튼 리버사이드역(Windsor & Eton Riverside)은 런던 워털루에서 스테인스를 거쳐 오는 사우스 웨스턴 철도 노선의 종점이고, 성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Royal Collection Trust에 따르면 두 역 모두 걸어서 10분이 안 걸립니다. 윈저 익스프레스 버스가 시내 중심까지 다니며, 702번은 런던 빅토리아역 근처에서, 703번은 히스로 공항 제5터미널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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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과 입장 안내

  • 성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문을 닫고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엽니다. 2026년에는 12월 22일(화)과 12월 29일(화)에도 엽니다. Royal Collection Trust는 2026년 10월 19일(월)과 12월 24일(목)부터 26일(토)까지 종일 휴관을 발표했고, 스테이트 아파트먼트는 국가 행사로 갑자기 닫힐 수 있으니, 떠나기 전에 rct.uk의 휴관 목록을 확인하세요.
  • 개장은 연중 10:00입니다.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마지막 입장 16:00, 폐장 17:15이고, 1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는 마지막 입장 15:00, 폐장 16:15입니다. 스테이트 아파트먼트 입구는 마지막 입장 30분 뒤에 닫히므로, 문을 통과한 뒤 10분 걸리는 오르막을 감안해 시간을 넉넉히 잡으세요.
  • 2026년 성인 일반 입장권은 사전 예약 시 32.00파운드, 당일 36.00파운드입니다. 18~24세는 21.00파운드 또는 24.00파운드, 5~17세는 16.00파운드 또는 18.00파운드이고, 5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이 페이지의 모든 스팟이 이 입장권으로 해결되며, 무료 재입장이 되는 1년 패스(1-Year Pass)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라운드 타워 오르기와 그레이트 키친은 1년 중 일부 기간에만 파는 별도의, 더 비싼 투어 티켓입니다.
  • 성 조지 예배당은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방문객을 받고 마지막 입장은 16:00이며, 일요일에는 예배만 드립니다. 이 페이지의 마지막 스팟은 예배당 바깥에서 재생하므로 성이 여는 날이면 언제든 들을 수 있습니다. 스테이트 아파트먼트와 예배당 안에서는 사진도 영상도 찍을 수 없으니 카메라는 넣어 두시고, 바깥 경내에서는 마음껏 찍으세요. 오히려 권장하는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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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오디오 가이드

성의 공식 가이드는 무료입니다. Royal Collection Trust는 관람을 시작할 때 멀티미디어 가이드를 나눠 주며, 국왕의 소개로 시작하는 이 가이드는 성 경내, 스테이트 아파트먼트, 성 조지 예배당을 다룹니다. 언어는 영어, 브라질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표준어), 러시아어, 스페인어이고, 자막이 달린 영국 수어 영상판도 있습니다. 7세부터 11세 어린이용판과 시각장애인·저시력 방문객을 위한 음성 해설 투어가 있으며, 본인의 유선 헤드폰을 꽂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다섯 스팟은 그와 나란히 쓰는 것으로, 첫 번째 스팟은 단말기를 받기 전 캐슬 힐에서 재생되고, 모든 원고는 플레이어 아래에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

자주 묻는 질문

무료 윈저성 오디오 가이드가 있나요?

네, 하나가 아닙니다. Royal Collection Trust의 멀티미디어 가이드는 무료이며, 관람을 시작할 때 나눠 주고 9개 언어 음성과 영국 수어를 지원합니다. 저희 가이드도 돈이 들지 않습니다. 다섯 스팟은 어느 휴대전화 브라우저에서든 스트리밍되고, 캐슬 힐 바깥에서 시작합니다. 동선을 따라가다 그 밖에 궁금한 것이 생기면, 초상화든 예배당 지붕 위 짐승 조각이든 사진 한 장으로 Chiaro가 설명해 드립니다.

입장권 없이도 윈저성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나요?

첫 번째 스팟은 들을 수 있습니다. 헨리 8세 문 아래의 공공 도로 캐슬 힐에서, 입장 센터에 닿기 전에 재생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네 곳, 라운드 타워와 노르만 문, 스테이트 엔트런스, 워털루 체임버, 성 조지 예배당은 성 안에 있고 모두 일반 입장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로 예약할 것은 없습니다.

윈저성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얼마인가요?

무료입니다. 멀티미디어 가이드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고, 관람을 시작할 때 단말기를 받습니다. 국왕의 소개로 시작해 경내, 스테이트 아파트먼트, 예배당을 차례로 안내합니다. 7세부터 11세를 위한 어린이판이 있고, 시각장애인과 저시력 방문객은 음성 해설 투어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윈저성은 화요일에 여나요?

아니요. 성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방문객을 받지 않고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엽니다. 2026년에는 예외가 두 번 있어, 12월 22일(화)과 12월 29일(화)에 문을 엽니다. 미리 발표된 휴관일도 있는데, 2026년 10월 19일(월)과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가 그렇습니다. 성 조지 예배당은 일주일에 나흘,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만 방문객을 받습니다.

캐슬 힐의 어느 쪽 끝에서 걷기 시작하나요?

아래쪽 끝입니다. 하부 구역 맨 아래 헨리 8세 문 밑의 보도에서 시작합니다. 입장은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간 입장 센터에서 하고, 라운드 타워를 지나 노스 테라스와 스테이트 아파트먼트까지 올라간 다음, 성 조지 예배당으로 내려와 처음 본 바로 그 문으로 나갑니다. 동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통행입니다.

윈저성 관람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Royal Collection Trust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권합니다. 입장 센터에서 스테이트 아파트먼트까지 걷는 데만 약 10분이 걸리고 대부분 오르막이며, 여기 다섯 스팟을 듣는 데 10분쯤이 더해집니다.

다른 오디오 가이드

Chiaro 제작. 윈저성 측과는 공식적인 관련이 없습니다.